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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임수]“손해 봐도 미리 타자” 국민연금 조기 수급 급증

입력 | 2024-03-21 23:51:00


국민연금을 애초 받을 나이보다 1∼5년 앞당겨 일찍 타가는 걸 조기노령연금이라고 한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한 사람들의 노후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 넘고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면 신청할 수 있지만, 미리 당겨 받는 만큼 일종의 페널티가 있다. 1년 일찍 받을 때마다 연금액이 연 6%씩 깎여 3년 먼저 받으면 18%가, 5년 미리 받으면 30%가 감액된다.

▷원래 받을 나이가 됐다고 연금액이 다시 올라가지도 않는다. 5년 일찍 받으면 당초 받을 연금의 70%를 죽을 때까지 받는다는 얘기다. 조기노령연금을 ‘손해연금’으로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이렇게 손해를 보면서도 조기에 연금을 타가는 사람이 지난해 11월 현재 85만 명에 육박했다. 10년 새 갑절 이상으로 불어난 규모다. 이 속도라면 조기연금 수급자는 올해 96만 명을 거쳐 내년이면 100만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조기 수령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건 은퇴는 점점 빨라지는데 노후 준비는 턱없이 모자란 탓이 크다. 지난해 한국의 55∼64세가 가장 오래 일한 직장을 그만둔 나이는 평균 49.4세에 그쳤다. 법정 정년은 60세이지만 현실 정년은 49세라는 뜻이다. 이런데도 은퇴하지 않은 가구 중 노후 준비가 잘된 가구는 8%가 안 되고, 이미 은퇴한 가구도 열에 여섯은 생활비가 부족한 형편이다. 은퇴 후 먹고살기가 빠듯해 국민연금이라도 당겨 받아야 할 처지라는 얘기다.

▷여기에다 국민연금을 받는 나이마저 늦춰지면서 은퇴 후 ‘소득 크레바스’(소득 절벽)가 길어지고 있다. 연금 수급 나이가 과거엔 법정 정년과 똑같은 60세였다가 2013년부터 5년마다 한 살씩 늦춰지도록 변경됐다. 마침 지난해도 연금 수급 연령이 62세에서 63세로 한 살 늦춰졌는데, 원래 연금을 탈 순번이던 1961년생이 1년을 더 기다리지 못하고 조기연금을 대거 신청했다고 한다. 수급 연령이 늦춰지는 5년마다 조기노령연금 신청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배경이다.

▷앞으로 1965년생, 1969년생 등 ‘낀 세대’가 1년 더 길어질 소득 공백기를 견디지 못하고 조기에 연금을 타갈 여지가 적지 않다. 문제는 지난해 조기노령연금 평균 수령액이 월 66만 원 정도에 그친다는 점이다. 은퇴 후 부부에게 필요한 최소 생활비(월 231만 원)의 30%도 안 되는 수준이다. 안 그래도 생애평균소득 대비 국민연금으로 받는 돈이 40%에 불과한데, 미리 타간다고 페널티까지 받으니 노후 버팀목이 되기에 한참이나 부족한 것이다. 쥐꼬리 수준의 공적연금 안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