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추대 주도한 친윤-韓 공천 갈등 총선 참패 위기론에도 치부 드러내
윤완준 정치부장
찐윤(진짜 친윤석열)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은 지난해 12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추대 과정의 여론전을 주도했다. 그달 비윤계에서 한 위원장 추대에 반발이 나올 때 이 의원은 “당원과 민심, 의원들의 선택은 압도적으로 한 위원장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친윤은 일사불란하게 한 위원장 추대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의원을 필두로 한 친윤은 한 위원장 말고는 위기의 국민의힘을 반전시킬 카드가 없다고 봤다.
그런 그가 총선 후보 등록일 시작(21일) 하루 전날 “밀실”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한 위원장과 공천 갈등이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 위원장의 공천이 한동안 ‘조용한 공천’ 평가를 받았지만 양측의 갈등은 누적되고 있었다. 공천 본격화 전 1월 윤석열-한동훈 1차 갈등의 본질이 공천 파워게임에 있다고 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 위원장이 이 의원에게 공천 관련 오해를 낳을 수 있으니 자신의 사무실에 자주 오지 말라는 취지로 얘기했을 때부터 균열은 시작됐다.
이 의원은 20일 회견에서 “상황의 본질, 전후관계를 밝히는 게 국민과 당원에 대한 도리라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내가 월권이면 한동훈도 장동혁도 모두 월권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한 위원장에게 특정 개인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의원이 한 말이 눈길을 끈다. “한 위원장에게 주기환 위원장 (추천을) 얘기했다.” 주기환 광주시당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20년 지기다. 윤 대통령과 특수 관계인 인물의 비례 추천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이게 사천이냐”고 했다. 그날 밤 늦게 발표된 비례대표 후보 조정 결과에 주 위원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윤 대통령은 민생특별보좌관을 신설해 주 위원장을 임명했다. 위인설관 논란이 뻔히 보이는데도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불쾌감을 드러내는 방식이 노골적이었다.
이 의원이 회견을 연 날은 여권이 ‘이종섭-황상무’ 문제를 둘러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2차 갈등 봉합 분위기를 만든 날이다. 이 의원은 이런 분위기에 자칫 찬물을 쏟을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당 참패 위기론이 그토록 분출하는데도 공천 갈등의 치부를 밖으로 드러내며 분노를 쏟아냈다. 공천을 둘러싼 한 위원장과 친윤 간 갈등, 나아가 윤-한 갈등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격렬하게 진행됐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 공천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자기 사람을 넣기 위한 권력 투쟁이다. 남이 삼킨 음식을 목구멍에서 빼서 내 입에 넣는 게 공천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3년 남았다.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인 한 위원장의 향방은 여당 총선 성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총선 결과가 어떻든 여당이 이전처럼 윤 대통령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라는 보장이 없다. 윤-한 갈등의 긴장은 현재진행형일 가능성이 높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