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본보 기자의 ‘도파민 단식’ 체험기
도파민은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문제는 ‘질 나쁜’ 도파민에 빠져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짧은 영상 위주의 쇼트폼 콘텐츠를 시청할 때가 대표적이다. 손쉽게 분노와 기쁨을 느끼며 도파민이 빠르게 분출되고, 이를 중단하면 우울과 불안이 밀려오면서 큰 자극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다.
휘발성 자극을 모두 끊고 그 시간을 독서나 산책으로 채우면 몸과 마음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본보 기자가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동안 도파민 단식에 나선 건 이런 이유였다.
스마트폰 끈 지 10분 만에 ‘카톡’ 환청… 익숙해지니 ‘물멍’도 즐거워
스마트폰-커피-술 멀리하기 도전… 무료함에 독서-청소 등 할일 찾아
짧은 영상으로 얻는 ‘즉각 보상’… 우울-불안 쫓으려 더 큰 자극 불러
중고생 32% “하루 8시간 스마트폰”… 최근 ‘전자기기 금지’ 카페 생기고
중독 청소년 대상 캠프도 등장… “자극 멀리하기, 짧게 해도 효과”
짧은 영상으로 얻는 ‘즉각 보상’… 우울-불안 쫓으려 더 큰 자극 불러
중고생 32% “하루 8시간 스마트폰”… 최근 ‘전자기기 금지’ 카페 생기고
중독 청소년 대상 캠프도 등장… “자극 멀리하기, 짧게 해도 효과”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 생경했던 고요, 익숙해지자 ‘벽돌 책’도 술술
한 유통업체에 따르면 올 1월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의 유튜브 사용 시간은 한 달 평균 40시간으로 5년 전보다 19시간 늘었다. 교육부의 ‘2022년 청소년 건강 행태 조사’에서 중고교생 31.6%는 주말에 하루 8시간 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고 답했다. 업무 연락이나 인터넷 강의를 위해서라며 우리는 그간 스마트폰에 너무 많은 곁을 내주고 살아온 건 아닐까.
기자가 900쪽이 넘는 에밀 루트비히의 '나폴레옹'을 읽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사에 관심이 생겨서 사뒀지만 자꾸 눈이 휴대전화로 가서 하루 10쪽도 넘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날은 2시간 동안 124쪽이나 읽었다. 사진은 미리 설치해둔 스마트폰의 저속촬영(타임랩스) 기능으로 찍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얼마 전 등록한 피아노 교습소에서 받아 온 악보도 꺼내 봤다. 평소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던 음표가 어쩐지 더 생생하게 보였다. 악보 속 히사이시 조의 ‘언제나 몇 번이라도’가 스마트폰 음악 애플리케이션(앱) 없이도 재생되는 듯했다.
● 멍하니 한강 바라보니 잊고 살았던 친구 떠올라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디톡스 경험’ 찾는 현대인들
게티이미지코리아
19일 오후 2시경 이 카페에선 손님 5명이 책을 읽고 있었다. 누구도 휴대전화를 보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지 않고 있었다. 이들의 휴대전화는 모두 계산대 앞에 놓인 작은 철제 박스에 보관돼 있었다. 카페 안에 들어오기 전에 휴대전화를 맡겨 두는 것이 이 카페의 원칙이다.
초창기에는 항의나 반발도 컸다고 한다. 평일 기준 방문객 수가 하루 20명으로 대폭 감소하기도 했다. 디지털 디톡스(해독)가 유행하면서 지금은 방문객이 다시 느는 추세다. 평일에는 80명 넘게, 주말에는 그 두 배를 넘어 200명 가까이 방문하기도 한다.
손님들은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며 방문 이유를 밝혔다. 한 달에 한 번 이 카페를 방문한다는 김영수 씨(43)는 “다른 북카페는 주변 이용객이 전부 동영상을 보고 있어 덩달아 집중이 안 된다”며 “이곳에서는 책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권민경 씨(27)는 “2시간만이라도 집중해서 책을 읽기 위해 왔다”고 전했다. 3개월째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 중인 권 씨는 “짧은 길이의 자극적인 영상 등을 보면 시종 불안하고 마음이 복잡해 일부러 하루 7시간 이상 휴대전화를 보지 않고 있다”며 “그러고 나면 책이나 영화 등을 볼 때 집중력이 상당히 높아진 것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 “도파민 단식, 짧게라도 꾸준히 시도하면 효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22년 스마트폰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 3세∼69세 스마트폰 이용자 중 23.6%가 과의존 위험군이었다. 이 중 만 10세∼19세 청소년 이용자의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40.1%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최근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중독된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설립 청소년 기숙형 복합 치유 재활기관인 국립청소년디딤센터는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치유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과의존 청소년들은 캠프를 통해 정신의학 전문의와 전문 상담사가 함께하는 상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숲치료·놀이치료 등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외부활동도 제공된다.
전문가들은 영상 시청에 중독될 경우 우울 증세 등이 심각해질 수 있으며, 나이가 어릴수록 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단기적인 디지털 디톡스도 안정감이나 우울감 해소에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중독 치료 전문가인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 스스로의 ‘보상’에 중독되면 뇌는 행복을 느낄 수 없어진다”며 “(도파민 단식을) 한 달은 꾸준히 시도하도록 환경과 규칙을 바꿔 보라”고 권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유튜브 ‘쇼츠’처럼 시선을 잡아 두기 위한 고자극 영상에 과잉 노출되면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단기적인 과잉 자극은 도파민 분비 체계 등 기분 조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쇼츠가 주는 자극이 100이라고 한다면, 자극이 사라질 경우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0’이 아닌 ‘―100’ 수준”이라며 “100만큼의 자극을 10개의 작은 자극으로 분산해 대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도파민 단식일정 기간 전자기기나 커피, 술 등 자극적인 요소를 끊고 건강한 도파민 분비 패턴을 회복시키는 생활 양식. 쇼트폼 콘텐츠 등 자극을 끊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대체할 독서, 산책 등 건전한 자극을 충분히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