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우연히 UTMB(울트라트레일몽블랑)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봤는데 제 심장이 뛰는 겁니다. ‘그래 저거야. 나도 달려야지’하며 산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포인트를 주는 대회에 출전해 UTMB에 출전할 자격을 갖췄는데 추첨에서 떨어져 못 갔어요. 올해 다시 도전할 겁니다.”
김지원 씨가 서울 도림천 근처 오솔길을 질주하고 있다. 10년 넘게 사이클을 타던 그는 지난해 초 우연히 산을 달리는 영상을 보고 트레일러닝에 빠졌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UTMB는 유럽 알프스산맥 170km를 달리는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다. 전 세계에서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참가 기준이 다소 까다롭다. 러닝 스톤을 쌓는 등 자격을 갖춘 뒤 추첨에서 당첨돼야 출전할 수 있다. 마케팅 전문가 김지원 씨(39)는 지난해 트레일러닝에 입문한 뒤 트랜스 제주 트레일러닝대회 50km를 완주해 러닝 스톤 2개, 홍콩 트랜스 란타우 트레일러닝 100km 완주해 러닝 스톤 3개를 받았다. 러닝 스톤 5개면 그동안 출전한 사람들의 평균이라 기대했는데 추첨에서 떨어진 것이다.
김 씨는 최근 태국으로 한 달간 마라톤 및 트레일러닝 여행을 다녀왔다. 이곳저곳 여행 다니며 태국의 산을 달렸다. 사이클에 빠졌던 2016년에는 유럽에서 석 달 지내면서 피레네산맥과 알프스산맥을 자전거 타고 오르내렸다. 그는 뭐에 끌리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지금은 UTMB 완주에 집중하고 있다.
김지원 씨가 산을 질주하고 있다. 김지원 씨 제공.
학창 시절 달리기를 잘했다. 초중고를 다닐 때 계주가 열리면 선수로 나갔다. 반에서 1~3등 안에는 꼭 들었다. 달리는 본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산을 달린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어요. 무엇보다 저 자신에 집중할 수 있어요. 자연에서 달리면 그 속에서 한없이 자유로워진 저 자신을 느낄 수 있어요. 살면서 느끼는 모든 걱정도 사라져요. 무념무상, 현생으로부터 자유를 찾죠. 또 사이클은 속도가 빠르다 보니까 풍경을 즐기기 쉽지 않은데 트레일러닝은 산, 나무, 풀, 바위 등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아요.”
김지원 씨가 사이클을 타고 질주하고 있다. 그는 10년 넘게 사이클을 탔고 각종 대회에도 출전했다. 김지원 씨 제공.
대회도 수십 차례 출전했다. 100km 내외의 장거리 대회인 그란폰도부터 10km 오르막을 타는 힐크라임 대회 등 가리지 않았다. 그는 “체중이 가벼워서 다운힐이나 평지 주행은 조금 불리하지만, 오르막은 강한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사이클대회에서 우승해 받은 상품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거리 사이클대회 그란폰도에 출전할 기회를 잡았다. 2017년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마라토나 돌로미티 138km를 완주했다. 한국 여성 최초 완주였다. 그는 2022년까지 이 대회에 두 번 더 출전했다.
김지원 씨가 사이클을 타고 있다. 김지원 씨 제공.
2019년 5월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고성 아이언맨 70.3에 출전하기도 했다. 철인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의 하프(수영 1.9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0975km)를 마일 단위로 표현한 하프 아이언맨 대회다. 김 씨는 5시간57분에 아이언맨 70.3을 완주했다. 그는 “수영은 이미 배웠고 사이클을 타다 보니 철인3종이 눈에 들어와 달렸다”고 했다.
김지원 씨가 2019년 아이언맨 70.3에 출전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김지원 씨 제공.
“이런 것 있죠. ‘산 100km를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 직접 해보면 되잖아요. 고통을 참으면 더 큰 기쁨이 찾아와요. 완주하면 자신감도 치솟고요. 고통은 몇 시간이지만 완주의 기쁨은 몇 년, 혹은 평생에 걸쳐 유지할 수 있죠.”
김 씨는 주중엔 서울 도림천 등을 5~10km 달리고, 주말엔 주로 관악산 둘레길을 질주한다. 그는 “관악산 둘레길은 32km 정도 되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했다. 대회를 앞두고는 어떻게 훈련할까?
김지원 씨가 한 트레일러닝대회체 출전해 달리고 있다. 김지원 씨 제공.
내리막을 달릴 때 위험하진 않을까?
“위험하니 조심히 달려야죠. 발을 빨리빨리 떼고 보폭을 짧게 해서 체중을 양 무릎에 왔다갔다 빨리 옮겨주는 게 가장 좋아요. 한 발에 오래 체중을 실으면 부하를 주는 시간이 길어져서 무릎 등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어요. 잔 발로 빨리 뛰어 내려가면 체중이 무릎에 주는 부하를 분산시킬 수 있어요.”
김지원 씨가 서울 도림천 근처 오솔길을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그는 4월부터는 산악안전 봉사조직인 ‘몬츄라 마운틴 패트롤’로 활동한다. 탐방객 안전사고 예방과 생태 환경 보전을 위한 봉사활동이다. “산에 가보면 정말 쓰레기가 많아요. 산행 등 아웃도어 활동 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LNT(Leave No Trace)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아하는 산을 오래 다닐 수 있죠.”
김지원 씨가 서울 도림천에서 운동화 끈을 묶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