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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1020 취향저격 마케팅으로 ‘애니 덕후’ 성지 만들어

입력 | 2024-03-25 03:00:00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 OTT ‘라프텔’
누적가입자 500만 보유
업계 온라인 전환 주도
키치 광고 등으로 잘파세대 공략




1020세대의 취향을 조준해 ‘키치’ 감성을 담아낸 라프텔의 다양한 광고들. 라프텔 제공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티빙 등 국내외 거대 기업이 경쟁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애니메이션 분야 하나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진 기업이 있다.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 OTT 플랫폼 ‘라프텔(LAFTEL)’이다.

라프텔은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등 국내에서 가장 많은 총 3000여 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누적 가입자 수는 약 500만 명, 지난해 기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드라마나 예능을 다루는 범용 콘텐츠에 규모는 작지만 수요가 확실히 존재하는 버티컬 콘텐츠에 집중해 보다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매출은 약 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19년 손익분기점 달성 이후 지난해 영업이익률을 약 10%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꾸준히 수익도 냈다.

불법 공유가 일상이던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라프텔은 어떻게 ‘만화의 보물섬’을 만드는 데 성공했을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3월 1호(388호)에 실린 라프텔의 성장 전략을 요약해 소개한다.

● 콘텐츠 공급사 경쟁의 틈 공략

2014년 창업 당시 라프텔은 만화 큐레이션 서비스로 시작했다. 하지만 큐레이션만으론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았다. 확고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다가 내린 결론이 바로 애니메이션 OTT다.

문제는 불법 공유 사이트가 득세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 외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애니메이션 유통 구조는 이렇다. 일본의 유명 제작사가 작품을 만들면 국내 콘텐츠 프로바이더(CP) 업체가 국내 판권을 사온다. 이 판권을 가지고 자사 방송채널이나 플랫폼에 신작을 송출하고, 구작이 되면 다른 채널이나 플랫폼에 판다. 이런 환경에선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나올 수 없었다. CP들이 자신의 킬러 콘텐츠를 경쟁사에 넘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불법 공유 사이트는 무차별적으로 콘텐츠를 올렸다. 불법이 합법보다 경쟁력이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 펼쳐졌다. 기존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유통 채널도 구시대적이었다. 여전히 온라인 전환은 더뎠고, TV채널이나 IPTV 같은 레거시 미디어가 중심이었다.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라프텔은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애니메이션을 가장 빠르고 편리하게 볼 수 있는 플랫폼에 도전했다. 라프텔은 시대의 흐름, 그리고 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산업 전체를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환기하며 CP들의 협력을 하나씩 얻어냈다. 불법 사이트를 능가하는 합법 플랫폼을 구축해야 시장의 전체 파이가 더욱 커지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켰다.

결과적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 전반의 온라인 전환을 라프텔이 도맡은 그림이 됐다. 라프텔은 성장 과정에서 생긴 수익은 CP들에게 충분히 셰어하면서 협력관계를 더욱 굳건히 했다. 이 신뢰에 기초해 라프텔은 CP들을 통해 일본에서 가져오는 신작 애니메이션의 90% 이상을 일정 기간 국내에서 독점 방영 중이다.

● 잘파세대 사로잡은 맞춤형 마케팅

라프텔 마케팅의 중심엔 ‘키치’ 코드가 있다. 손으로 서툴게 그린 그림, 윈도 그림판 같은 초보적인 툴로 디자인한 광고, 불쌍한 느낌으로 소비자의 측은지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멘트 등을 조합한다. 이른바 ‘의도한 발퀄(손이 아니라 발로 만든 것처럼 낮은 퀄리티)’이다. 특유의 친근함, 권위적이지 않은 느낌이 10대, 20대에 해당하는 잘파(Z+알파)세대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원동력이 된다.

1020세대의 취향을 조준해 ‘키치’ 감성을 담아낸 라프텔의 다양한 광고들. 라프텔 제공

대표적인 게 2017년 12월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냈던 ‘모지리(모자란 아이) 월정액’ 광고다. 서비스 수준이 아직 기대에 못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좀 모자라더라도 우리 상품 한 번만 써 달라’는 메시지를 담아 냈다. 광고는 오른손잡이 디자이너가 왼손으로 그렸다. 문구는 ‘약간 모자라지만 이해해주라’라고 썼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평소 대비 4배 이상 트래픽이 발생하는 등 예상 밖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1020세대의 취향을 조준해 ‘키치’ 감성을 담아낸 라프텔의 다양한 광고들. 라프텔 제공

1020세대 특성을 이해한 마케팅도 주효했다. 친구 초대, 작품 추천 프로모션이 대표적이다. 대개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OTT들은 30일 무료 체험, 이후 자동결제 형태의 프로모션을 선호한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3040세대에 효과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라프텔은 무료이용권 기한을 5일로 짧게 잡았다. 여기에 친구를 초대하거나 작품을 추천하면 기간을 3일 연장해줬다. 유입된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홍보하게 만들어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는 잘파 세대의 특성을 노렸다. 이때 제공한 3일 구독기간을 차곡차곡 모아 10년가량을 채운 구독자가 나왔을 정도다.

● 소수 정예 유지로 수익성 확보

라프텔의 채용은 엄격하다. 빠른 학습 능력과 뛰어난 업무 역량, 기존 구성원과의 적합성 등을 꼼꼼하게 따진다. 암묵적인 원칙도 있다. 현재 구성원보다 특출난 역량이 반드시 존재해야 채용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력 충원이 필요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조건에 맞지 않으면 공석으로 둔다. 이러다 보니 1명을 뽑는 데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그 결과 방만한 채용, 무리한 조직 확장으로 고생하는 여타 스타트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었다. 40명가량의 소수 정예로 OTT를 운영하면서 인건비를 비롯한 고정비용을 최대한 관리한다.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백상경 기자 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