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윌리엄 왕세자의 부인 캐서린 왕세자빈(42)은 영국인들에게 왕실의 완벽함을 상징해온 인물이다. 캐서린은 6년 전 셋째인 루이 왕자를 낳은 날 출산 7시간 만에 빨간색 드레스에 하이힐 차림으로 병원을 나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첫째 조지 왕자, 둘째 샬럿 공주가 태어난 날에도 캐서린은 말끔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등장해 로열 베이비를 건강하게 출산한 세손빈으로서 대중의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그가 22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메시지는 영국은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1월 복부 수술 후 검사에서 암이 발견돼 화학치료를 받고 있다.” 암의 종류나 단계를 밝히진 않았지만 암 진단 사실을 직접 공개한 것이다. 올 들어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캐서린을 둘러싸고 최근 가족사진 편집 논란이 확산되며 건강 위중설, 부부 불화설 등 온갖 루머가 돌던 와중에 나온 발표였다.
▷왕실 인사들의 건강 상태를 공개하는 건 오래전부터 왕실의 금기였다. 약한 군주로 비쳐 외세 침략의 빌미가 될 수 있고, 대내적으론 민심의 혼란을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실의 신비주의가 그런 명분으로 유지됐다. ‘군주제는 대낮의 햇빛을 받으면 마법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48년과 1950년 임신을 했을 때 왕실은 “여왕이 흥미로운 상태(interesting condition)에 있다”고만 했고, 여왕의 어머니가 1960년대 암을 앓았던 사실도 40년 뒤에야 전기 작가를 통해 알려졌다.
▷왕실 신비주의가 통하기 어려운 요즘 왕족들은 사치와 안락함을 누리는 대가로 대중의 동경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 공적인 존재가 됐다. SNS 시대에 왕관의 무게를 견딘다는 건 사생활의 자유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도 포함한다. 다만 산악자전거를 타고 럭비를 즐길 정도로 건강했던 캐서린 왕세자빈의 부쩍 수척해진 얼굴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만들어진 이미지의 완벽한 왕실보다 국왕과 며느리가 줄줄이 암 치료를 받게 된 진솔한 모습의 왕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