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중국에 집적대서 수출 부진? ‘수출한국’ 물류-안보 사활 걸린, 대만해협 문제가 우리와 상관없는 남일? ‘호랑이 앞 어린애’ 같은 李대표 인식
천광암 논설주간
“우리나라 최대 흑자국가·수출국가인 중국이 지금은 최대 수입국가가 돼 버렸어요. 중국 사람들이 한국 싫다고 한국 물건을 사지 않습니다.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는 뜻),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 … 대만해협이 뭘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 있어요. 그냥 우리는 우리 잘 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2일 충남 당진시 당진시장을 방문해서 한 말이다. “셰셰”를 연발하는 대목에서는 두 손을 모아 잡고 익살스러운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여러 군데에서 문제 소지가 보인다.
우선 “중국 사람들이 한국 싫다고 한국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대목. 이 말이 맞다면, 속은 쓰려도 자존심 접고 중국의 비위만 맞추면 대중 수출 부진을 단번에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대표의 진단은 번지수가 크게 틀렸다. 근래 대중 수출 부진은 대중 외교와 양국 국민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후발 주자인 중국이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급속히 좁히거나 역전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다음은 중국과 대만 양안 문제. “집적거린다”는 표현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영국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 지난해 11월 영국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을 거론해 중국과 갈등을 빚었던 사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발언은 얼마든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필자도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굳이 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쪽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익과 국격이 관련된 외교 문제를 놓고 우리 쪽에 “집적거린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맞나.
이 대표는 지난해 6월 주한 중국대사 관저에서 당시 싱하이밍 대사가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고압적으로 훈시하는 듯한 원고를 낭독하는 15분 동안 ‘병풍’처럼 앉아 있었다고 해서 여당은 물론 당내에서도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 이때랑 뭐가 다른가.
“대만해협이 뭘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 있어요. 그냥 우리는 우리 잘 살면 되는 거 아닙니까?”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힌다. 원내 제1당을 이끄는 정치지도자의 인식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비단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꾸 떠들 일은 아니지만,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주한미군이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중국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그에 대해 우리는 또 어떻게 대응할지 ‘컨틴전시 플랜’을 세워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지금의 국제 정세다.
중국 속담에 ‘사람이 호랑이를 해칠 생각이 없다고 해서 호랑이도 사람을 해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미중 간의 칼끝이 가장 첨예하게 맞닿아 있는 ‘양안 갈등’이나 ‘반도체 전쟁’은 한국이 말려들고 싶지 않다고 해서 말려들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우리 희망과는 무관하게 한국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는 ‘호랑이’는 코앞에 와 있다. ‘가치외교’든 ‘실용외교’든, ‘전략적 명확성’이든 ‘전략적 모호성’이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남을 궁리를 해서 민첩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언제 호랑이 밥이 될지 모른다.
나침반도, 지도도, 줏대도, 전략도, 책략도 없이 이리 “셰셰 셰셰”, 저리 “생큐 생큐” 해서 잘 살 수 있을 만큼 녹록한 시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