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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은 높낮이 없는 관계를 가르친다”… 무너진 공교육 제자리 찾게 하는 ‘착한’ 교육

입력 | 2024-03-26 03:00:00


한재우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사무총장이 13일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행복하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글 귀 앞에서 서당 교육의 가치와 인재상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제공

“서당은 잘난 사람 길러내는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 서당의 인재상입니다.”

치열한 대학 입시 경쟁 구도 하에 놓인 우리의 학생들은 기계적 학습과 진학 위주 교육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학생들은 공교육과 사교육을 넘나들며 내신 등급 올리기와 시험 점수에 목숨을 건다. 학생 뒤에서 부모가 열심히 등을 떠민다. 뛰어놀고, 운동하고, 친구를 사귀어야 할 유년-청소년기에 수학, 영어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추고, 안 틀리려는 훈련에만 매진한다.

‘나’라는 존재의 특별함을 찾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성적과 대학 간판으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규정된다. 인성과 예의, 공감, 배려가 사람 평가의 틈에 들어갈 여유가 없다.

위기에 빠진 교육의 대안을 논의하는 차원에서 서당의 교육 목표와 방향이 주목받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이사장 박성기, 이하 진흥회)’는 서당 문화와 예술 문화의 계승 및 국민 인성 함양을 목적으로 전국에서 전통 서당을 운영하는 훈장과 각계 지도자들의 뜻을 모아 2011년 창립한 비영리 공익 단체다. 최근 직접 찾아가는 여러 교육 프로그램 사업을 통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바탕으로 서당 교육의 가치를 알리고 확산시키고 있다. 13일 진흥회에서 만난 한재우(50) 사무총장은 관계가 서당 교육의 핵심이라면서 “사람의 인격이 그 사람의 인생임을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을 지낸 고 ‘해평’ 한양원 선생의 아들이다. 현재는 종로국제서당 훈장도 맡고 있다. 한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앎’을 ‘삶’으로 실천하는 교육이 핵심… “그것이 인격이고, 곧 인생이다”

종로 국제 서당에서 사람 관계와 인격 교육을 하는 한 사무총장

-‘서당’ 하면 아직도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이 있다.

“옛 조상들의 살폈던 좋은 가치들이 있으니, 우리가 그것을 잘 지키고, 따르고, 이 시대에 살려보자는 건 좋은데 그걸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 공감을 한다. 여기서 고민이 많다. 그런데 분명히 가야 할 길은 보인다. 기능적인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들은 분명 다른 공부에 대한 갈증이 클 거다. 그 갈증을 채워줘야 하는 서당의 시대적 교육 역할이 있다고 본다.”



-어떤 역할일까. 대학 간판과 직업, 연봉으로 사람의 가치를 정해버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인성과 예의가 뒷전으로 밀렸다.


“서당이 지향하는 교육은 ‘앎’을 ‘삶’으로 잘 실천해 좋은 사회를 만드는 축이 되라는 것에 있다. 핵심은 ‘관계’다. 배운 지식을 잘 살려 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건강해진다. 올바른 관계 형성에는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서당 교육의 인재상을 맛으로 표현하면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등을 다 담아낼 수 있는 맹물이라 할 수 있다. 맹물은 맛이 없지만, 다른 맛이 본연의 맛을 낼 수 있게 해준다. 맹물이 곧 참다운 사람이다. 인성과 예절이라 하는 것도 결국은 관계 안에 있다. 인성 좋고, 예절 바르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존재로 가족과 사회가 따뜻해지고 갈등이 완화된다는 걸 의미한다. 시대가 아파하는 병, 문제에 대해서도 같이 아파할 수 있다.”

- 서당 교육 체계에서는 개인의 인생 목표 설정이 다를 수 있겠다.

“언젠가 대학에 다니는 여성이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하고 나누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23살 이모하고 조카가 바라는 꿈이 똑같더라. 직업을 꿈으로 봤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대에 들어가 의학 기술을 배웠다고 해서 의사는 아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 등의 가치까지 포함해서 세상이 ‘의사’라고 보는 거다. 직업인은 통합적 관계의 사고에서 사람과 현상을 봐야 한다. ‘내 밥그릇’ 논리를 가진 직업군의 일원으로 사회에 나가면 갈등 요소다. 서당은 관계를 직업과 꿈으로 연결하는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당은 공익 인재 기르는 공교육의 보완재… 공교육은 사교육 흉내 내서는 안 돼


-공교육에서 서당이 하고자 하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학원 등 사교육이 입시 경쟁에서 남을 이기는 기술을 가르치는 구조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가는 건 좋지 않다. 공교육에서 ‘공(公)’이라는 건 ‘더불어 함께’다. 이 가치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공교육이 가야 한다. 판사, 검사, 의사 등도 이런 환경에서 배출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반쪽으로 갈라져 극한 대립만을 일삼는 정치권을 보면, ‘관계’의 가치는 실종된 듯하다. 정치는 정말 다양한 ‘관계’가 잘 소통하도록 돕는 윤활유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정치에서 ‘정(政)’은 바로 잡는다는 것이다. 바로 잡으려고 하는 사람, 정치인의 언행과 자세, 태도, 인격이 좋아야 한다. 자신이 옳지 않은데 상대를 바로잡으려고 하니 바른 정치가 나올 수 없다. 우리 사회와 정치에 어른이 없다고 한다. ‘본보기’가 없다는 거다. 본보기는 가정에서는 부모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다. 사회 지도층 인사, 정치 지도자일 수 있다. 문제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당 교육은 ‘앎’이 ‘삶’으로 이어지는 교육이라 했다. 내가 아는 것과 현실에서 실천하는 게 다르다보니 괴리가 생긴다. 아는 것은 정의인데 실천은 집단 이기주의, 당리적, 정략적으로 나온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도 보고 배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갈등이 생긴다.”



-서당 교육이 곧 시대 ‘본보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이들을 통합할 수 있는 리더가 없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맛을 담아낼 수 있는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는 점에서 서당 교육이 절실하다.”

-AI(인공지능)시대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야 하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진흥회가 22회째 ‘대한민국 서당문화 한마당’을 4월27일(남원)과 5월19일(종로)에 개최하는데, 올해 행사 주제가 ‘ㅅㄷ(서당), AI에 답하다’이다. AI는 ‘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 AI가 답할 수 없는 부분은 사람의 관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서당 교육은 관계 윤리를 다루기 때문에 AI도 역시 우리에게 답을 얻어가야 한다.”





안 보이는 것을 가르치는, 졸업장 없는 ‘인간학’ 교육 학교


-학교를 다닌 적이 있나?

“없다.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이 1981년 지방 서당으로 내려보냈다. 남들은 다 서울로 유학을 오고, 직장을 찾아서 오는 데 반대로 서울에서 시골 서당으로 갔다. 부모님은 ‘세상이 물질로만 가지 않는다. 내 새끼는 돈 버는 기계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서당으로 보냈다. ‘극즉필반(極卽必反, 극에 달하면 반전이 일어난다)’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이 ‘물질만능주의’로 가다 보면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다시 사람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인간의 품성과 인격의 바탕이 있고, 또 인간이 가진 넓은 ‘숲’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이 다시 온다는 거다. ‘참 따뜻해’, ‘인간미가 넘쳐’라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온다. 18년간 서당 공부를 했는데 주변에서 ‘당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물어본다. 졸업장이 없으니 증명은 못한다. 있다 한들 사회에서 인정해줄까? 서당에서 교육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의 마음 가짐을 가르치니까. 맑은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다. 인정을 당장 받기 쉽지는 않겠지만 공기 같은 사람이 많이 나오도록 가르치고 싶다.”



-미래 교육 방향에 대한 국가적 고민이 큰데, 결국 답의 일부가 서당 교육에 있지 않을까.

“관계는 결국 시대를 이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당 교육은 ‘인간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당신 때문에 내가 불행해’라는 시각이 아니라 ‘네가 있으니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라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미래 지향적이다. 혼자보다는 함께 가는 게 좋고, 좀 늦더라도 같이 가면 모두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앎’을 깨우치게 하는 교육이기에 평생 받아야 한다. 끝은 없다. 서당 교육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어져야 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