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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임용한의 전쟁사]〈308〉

입력 | 2024-03-25 23:33:00


실화를 소재로 한 전쟁 드라마를 보면 지휘관, 베테랑 부사관, 병사들은 실제 인물과 비슷하거나 누가 봐도 강인하고 용감해 보이는 배우를 캐스팅한다. 반면에 심지어 사진이 남아 있어도, 꼭 왜곡되는 인물이 의무병, 군종 신부나 목사이다. 이들의 이미지는 언제나 비슷하다. 공부는 잘할 것 같지만, 겁은 좀 있고, 거친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갸름하고 왜소하고, 얌전해 보이는 인상을 찾는다.

20세기의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그들이 기억하는 의무병은 그렇게 나약한 이미지도 아니고, 편하고 안전한 보직도 아니었다. 일반 의무병은 의사이거나 의대 출신도 아닌 일반 병사들 중에 차출되어 약간의 교육을 받은 병사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힘들고 위험한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포탄이 떨어지고 기관총탄이 퍽퍽 날아와 박히면 병사들은 참호에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 있지만, 의무병은 부상당한 병사를 구호하기 위해 참호와 참호 사이를 뛰어다니고, 때로는 사방이 노출된 야지에서 몸을 일으켜 부상병을 후송해야 했다.

이라크전쟁 때 어느 이라크 저격병은 시가지에서 상당수의 미군을 사살했는데, 부상당한 병사를 후송하는 병사는 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운은 지극한 예외에 속한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 저격병들에게는 1순위 타깃이 의무병이었다. 이런 고의적인 저격이 아니라도 상륙 작전 중에 사방에 쓰러진 부상병을 구하러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다 보면 의무병들이 제일 먼저 소진되는 경우도 있었다. 타라와 전투에서는 상륙을 시도한 지 하루도 지나기 전에 22명의 위생병 중 21명이 전사해 버렸다.

의무병이 없으면 작은 상처로도 죽거나 평생의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병사들의 사기는 급락하고 움직임은 극도로 소극적이게 된다. 한국전쟁 때 한국군 병사들이 제일 부러워한 것이 미군의 보급보다 의료 체계였다. 즉사만 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의사들의 파업이 국가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의사들도 할 말과 고민이 많다. 하지만 의무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처럼 진지한 설득과 감동의 과정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