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서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는 천안함 전사자 고 김태석 해군 원사의 막내딸 해봄 씨. 채널A 화면 캡처
손효주 기자
아빠에 대한 기억이 시작된 날은 2010년 3월 26일부터였다. 당시 김해봄 씨는 다섯 살이었다. 해봄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010년 3월 이전 아빠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뭔가를 기억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고 했다.
생전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는 해봄 씨지만 기억이 시작된 순간만큼은 또렷하다. 해봄이 다섯 살 때인 그날, 해군 2함대사령부가 있는 경기 평택항은 시끌벅적했다. 어른들이 가득 모여 있었고 통곡이 이어졌다. 해봄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랐다. 누군가 “아빠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했지만 “돌아가신다”라는 말의 의미도 몰라 눈만 끔뻑였다. 해봄은 펑펑 우는 어른들 모습 자체가 낯설었다.
TV에선 천안함 실종자 수색 장면이 나왔다. 아빠 사진이 TV에 나오면 해봄은 “아빠다!”라고 외쳤다. TV 속 아빠가 반가워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해봄은 맑게 웃었지만 어른들은 더 크게 울었다.
14년 전 아무것도 몰라 웃던 해봄 씨는 이날 3분 남짓 편지를 낭독하며 여러 번 울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행사 참석자들도 눈물을 훔쳤다. 편지 낭독이 수차례 중단됐다. 편지를 읽으면서 부른 “아빠”라는 말도 10여 년 만이었다. 그는 “눈물이 나는 와중에도 아빠라고 부르는 게 조금 어색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빠와 놀던 기억이 언뜻 나긴 하지만 ‘언뜻’이어서 ‘나, 아빠랑 어디 가서 뭘 했어’라고 설명할 수 있을 만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편지를 읽는데 편지에 담을 만한 아빠와의 추억이 기억에 없다는 게 아쉬웠어요. 아빠를 만나 육성으로 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눈물이 많이 났어요.”
해봄 씨는 그간 매년 3월 26일 열리는 천안함 46용사 추모식은 물론이고 2016년부터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에 열리고 있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도 참석해왔다. 그는 “내게 3월은 어린 시절부터 행사에 가는 달이었다”면서 “매년 3월이 되면 어른들이 또 얼마나 많이 울까 생각하곤 했다”고 말했다. 또 “아빠와의 추억은 없지만 그리운 느낌은 이맘때 더 강해진다”고도 했다.
해봄 씨에게 올해 3월은 더 특별했다. 그는 올해 천안함 피격 당시 산화한 이들 중 가장 막내였던 장병들과 같은 나이가 됐다. 당시 김동진 중사, 장철희 일병 등은 1991년생으로 만 19세였다. 그는 “아빠와 함께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이 겨우 내 나이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해봄 씨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을 때쯤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후보였던 정봉주 전 의원은 이른바 ‘목발 경품’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2015년 북한군의 목함 지뢰 도발로 중상을 입은 김정원 상사, 하재헌 예비역 중사 등을 조롱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26일은 천안함 피격 14주기다. 해봄 씨는 2함대사령부에서 열리는 14주기 추모식에도 참석한다. 매년 3월이 되면 아버지가 가장 보고 싶다는 그는 14주기 하루 전 소소한 당부를 전해왔다.
“제 아버지처럼 나라를 지키다 희생한 분들을 영웅처럼 떠받들어 달라는 게 아니에요. 하루 종일 추모하고 슬퍼하자는 것도 아니고요. 최소한 망언이나 조롱은 안 했으면 합니다. 너무 마음 아프잖아요. 그냥 이런 분들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도 잘 살고 있다는 정도만 한 번쯤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