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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일본은 이공계 1만1000명 늘린다는데, 한국은…

입력 | 2024-03-26 00:00:00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삼성컨벤션센터에서 이공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일본 정부가 대학 이공계 입학 정원을 1만1000명 늘리기로 했다. 잃어버린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되찾고, 뒤처진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려면 기술인력 육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계 각국이 미래형 기술인재 키우기에 고심하는 가운데 한국에선 명문대 이공계 재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줄줄이 자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최근 21만 명인 전국 이공계 대학 입학 정원을 4년에 걸쳐 1만1000명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3000억 엔의 기금도 만들어 이공계 학부·학과를 만들거나 늘리는 대학에 지원하기로 했다. 2030년이면 일본 내 디지털 인력이 79만 명 부족할 것이란 전망이 나와서다. 올해 이미 이공계 입학생이 2200여 명 늘었다. 대학 졸업자 중 35%인 이공계 학위 취득자를 2032년에 50%로, 정원은 31만 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고 한다.

한국의 첨단 분야 인력 부족은 일본 못지않게 심각하다. 반도체 부문에선 2031년까지 5만6000명, 미래차는 2028년까지 4만 명, 인공지능(AI)은 2027년까지 1만3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이 5배로 증가하는 동안 서울대 같은 과 정원은 55명에서 80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15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 대학 내 학과 간 밥그릇 지키기가 기술인재 육성을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5년간 의대 정원을 1만 명 늘리는 정부의 결정으로 향후 이공계 인력 수급은 더 큰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이과 계열 상위권 2000명이 매년 의대로 빠져나갈 경우 몇 년 뒤 반도체, AI 분야의 인재 부족 사태는 심화할 수밖에 없다. 이미 KAIST, 포스텍 등 4개 이공계 특성화대학에서 최근 4년간 약 1200명이 자퇴했는데, 대다수는 의대 진학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대기업과 협약을 맺어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되는 고려대와 연세대 계약학과 합격생 중에서도 의대에 가려고 등록을 포기하는 학생이 속출했다.

대학에 인재 공급을 의존할 수 없다 보니 우리 기업들은 쓸 수 있는 기술인재를 찾아 인도, 베트남 등 해외로 나가고 있다. 각국이 첨단산업 인재 확보 각축전을 벌이는 와중에 지금처럼 이공계 고급 두뇌가 부족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성장 동력은 급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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