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게티이미지
“‘민원 릴레이’에 참여하면 치킨 경품을 드려요.”
지난달 경기의 한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아파트 인근 도로 보수 등을 관할 시청과 국토교통부에 요구한 뒤 이를 게시판에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치킨 주문 교환권을 나눠준다는 내용이었다. 게시자는 민원 접수 사이트로 연결되는 QR코드까지 첨부했다.
● 해운대구, 전국 최초로 직원 이름 비공개
26일 취재팀이 포털 사이트에서 ‘민원 릴레이’를 검색하자 이처럼 집단 민원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수십 건 검색됐다. 그중엔 공무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며 전화를 유도하는 글도 있었다. 경북 지역의 한 구청에서 일하는 주무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달 초 관내 한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에서 벌인 집단 민원의 표적이 됐다. 해당 주무관은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하루에도 30통 넘게 받느라 업무가 마비됐다”며 “대부분 구청이 해결할 수 없는, 개인 간 계약 갈등을 중재하라는 내용이어서 무력감이 들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임용 5년 미만 퇴직 공무원은 2019년 6663명에서 2022년 1만3321명으로 2배로 늘었다. 주로 일선에서 민원 처리 등을 담당하는 저연차 공무원들이다.
‘공무원 신상털이’가 문제가 되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구책을 찾아나섰다. 부산 해운대구는 21일 홈페이지 내 공개된 행정조직도에서 담당 직원의 성만 남기고 이름을 모두 ‘○○’으로 익명 처리했다. 또 청사에 설치됐던, 직원 이름과 사진이 담겨있는 좌석배치도를 모두 철거했다. 이런 정보보호 조치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이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악성 민원에 악용되는 걸 방지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 美선 공무원 신상 유포시 48시간 내 삭제해야
다만 이런 조치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공무원의 신상을 무분별하게 유포하는 움직임 자체를 제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근본적으로는 신상 유포자 등을 엄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선 공무원 개인정보의 온라인 유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행정기관이 소속 공무원의 개인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기 위해선 미리 허락받아야 하고, 만약 해당 정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유포되면 SNS 운영 업체는 피해 신고를 접수한 지 48시간 이내에 이를 삭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업체가 벌금을 물거나 해당 공무원에게 위자료를 줘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민원 편의성을 유지하면서 공무원들의 ‘숨을 권리’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름 역시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공무원이 위축될뿐더러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업무와 내선 번호만 공개하고, 추가적인 정보를 유출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