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신분석학의 역사를 보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창시자 프로이트는 두뇌가 명석했지만 출발점에서 시행착오를 상당히 겪었습니다. 신경해부학 그리고 신경생리학이 지배하고 있던 그 시기 의학계에서 ‘마음의 작용’, 보이지 않는 것을 파악하려고 시도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버텨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고민에 빠진 프로이트는 환자의 이마에 손을 얹고 누르면서 생각에 집중하라고, 떠오르는 것들을 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압박 기법’을 쓴 겁니다. 하지만 환자가 “그렇게 하시니 생각나던 것들도 다 자취를 감추네요!”라고 항의하자 포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포기의 순간에 발상의 전환을 했다는 점입니다. “차라리 내버려 두자!” ‘자유연상’ 기법의 시작입니다.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거르지 말고 다 이야기해 주세요!” 물론 거르지 않고 다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불안, 우울, 수치심, 죄책감, 분노가 방해합니다. 심하면 긴 침묵에 빠집니다. 저항과 방어가 해소돼야 대화가 재개됩니다. 강요한다면 이미 자유연상이 아닙니다. 마음은 압박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분석을 받는 사람인 피분석자에게 분석가 마음대로 하는 말을 묵묵히 들을 의무는 없습니다. 피분석자에게는 자유롭게 말할 권리만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특정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세한 과정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과정이 순리(順理)에 따라 진행되면 목표는 저절로 성취된다고 봅니다. 절대로 무리(無理)하지 않습니다. 순리를 어기면 결과가 좋을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분석가는 자신의 판단에 피분석자가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징벌하지 않습니다. 분석가는 ‘분석 경찰’이 아닙니다. 피분석자를 무조건 자신이 마음에 두는 길로 이끌고 가는 ‘감독자’가 아니고 어려움을 도와주는 ‘지지자’여야 합니다. 피분석자 마음의 흐름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 “나를 따르라!” 하고 명령한다면? 큰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니 실력 있는 분석가는 절대로 확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게는 이러이러하게 보입니다만…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는 식입니다. 분석가 의견이 강할수록 피분석자는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서 입을 닫습니다. 대화 공간은 축소되거나 닫힙니다.
분석이 정체되고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면 제대로 된 분석가는 피분석자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혹시 무엇을 엉뚱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 자주 물어야 합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 ‘역전이(逆轉移) 분석’이라고 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는 말입니다.
분석은 피분석자와 분석가 사이의 내밀(內密)한 작업입니다. 비밀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분석가가 다른 사람, 예를 들어 가족과 소통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분석은 파경에 달합니다. 뱃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분석은 언어로 소통하는 치료법입니다. 몸짓이나 침묵으로도 나타내지만 단어 선택이 중요합니다. 같은 단어를 서로 쓰고 있어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피분석자의 ‘우울’이 병적인 정도인지, 아니면 약간의 ‘좌절’을 그렇게 과장해서 표현했는지를 똑바로 알아야 제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특정 단어가 주는 느낌이나 그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연상이 때로는 결정적으로 작용함도 알고 미리 조심해서 잘 선택해야 합니다. 단어 사용에 신중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크게 부정적인 울림을 던지는 단어는 피분석자의 마음에 상처를 줘서 저항을 불러오고 대화를 위축시키며 관계를 단절시킬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