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초만에 ‘폭삭’…선박 충돌에 맥없이 무너진 美대형 교량
26일(현지시간) 새벽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패타스코강을 항해하던 싱가포르 선적 컨테이너선 ‘달리(Dali)호’가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와 충돌해 교량이 붕괴했다. (엑스 갈무리)
반세기 가까이 견뎌온 미국 볼티모어의 대형 교량이 컨테이너선에 부딪혀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CNN과 CBS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26일 새벽 1시 27분경(현지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항만을 가로지르는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에 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충돌했다. 배는 무게를 지탱하는 중앙 교각을 들이받았다.
충돌 직후 2.6km에 달하는 교량 중 강물 위를 지나는 구간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왕복 4차선의 다리가 내려앉는 데는 2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엑스 갈무리)
“집 흔들려 잠깨, 지진 일어난 줄 알았다”
볼티모어 소방서장은, 수 초간 집을 흔드는 소리에 놀라서 깼다면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충돌 당시 다리 위에는 ‘포트홀’(도로 파임)을 보수하던 인부 8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2명은 구조됐지만 6명이 실종돼 현재 수색 중이다. 배에 탑승했던 선원은 총 22명으로 전원 구조됐다.
이 다리는 하루 3만대 이상의 차량이 지나는 곳이지만, 충돌 전 선원들이 조난 신고를 해 신속히 차량 통제가 이뤄지면서 다리를 지나던 차량 피해는 없었다.
웨스 모어 메릴랜드 주지사는 “조난신고를 하면서 경고가 나왔다. 그래서 다리로 오는 차를 막을 수 있었다. 이들(신고자들은)은 영웅이다.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당초 메릴랜드주 당국은 차량 여러대가 물에 빠졌고, 실종자 규모가 최대 20명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최종적으로 피해자는 다리 위에서 작업 하던 인부 8명으로 확인됐다.
(엑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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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300m 싱가포르 선박, 2015년 현대중공업 건조
충돌한 선박은 볼티모어항을 출항해 스리랑카 콜롬보로 가던 싱가포르 선적 컨테이너선 ‘달리(Dali)호’다. 2015년 현대중공업이 건조했다. 약 300m 길이에 폭은 48m로 컨테이너 9700개를 선적할 수 있다. 선주는 싱가포르 기업인 그레이스오션이며, 덴마크 선박업체 머스크가 용선 계약을 맺고, 관리와 운용은 싱가포르의 선원 공급업체 시너지 머린그룹이 담당해 왔다.이 배는 8노트(14㎞/h)의 속도로 이동하던 중 다리와 충돌하기 몇 분 전 메이데이(긴급 조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전 영상을 보면 배 전체의 불이 갑자기 꺼졌는데, 선원들은 동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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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항 중 동력상실…제동 시도했으나 교각에 ‘쾅’
싱가포르 항만청도 선박이 동력을 잃었으며 충돌 직전 배를 멈추기 위해 닻을 내렸다고 밝혔다. 통상 선박이 정지하려면 후진 프로펠러를 가동해야 하지만, 동력 문제로 가동이 불가능해지자 닻을 내리는 차선책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현재 배가 무너진 교각에 깔려있고, 잔해 처리도 쉽지 않아,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예비조사에서 테러 공격이라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조 바이든 대통령과 모어 주지사는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까지 정황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끔찍한 ‘사고’였다. 고의적인 일이라고 믿을만한 징후도 그럴만한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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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견딘 2.6km 다리, 허무한 붕괴에 “충격”
1977년 개통한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는 약 2.6km 길이로 퍼탭스코 강 하류를 가로질러 볼티모어항 외곽을 연결한다. 다리명은 미국 국가를 작사한 ‘프랜시스 스콧 키’의 이름을 땄다. 그는 미국과 영국이 전쟁 중이던 1814년 볼티모어를 점령하려는 영국 해군의 포격에 맞서는 미군 요새 위로 성조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시를 지었고, 그 시가 미국 국가의 가사가 됐다.CNN 앵커는 “저렇게 다리가 완전히 붕괴된 것은 아주 이례적”이라고 언급했다. 실종 인부들을 고용한 시설유지보수공사 관계자는 “우리는 안전에 대해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다리가 붕괴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영상을 촬영하면서 “하느님 맙소사”라고 탄식을 내뱉었다.
폴 위데펠드 메릴랜드주 교통부 장관은 “볼티모어항의 선박 입출항은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중단된다”고 밝혔다. 볼티모어 항이 잠정 폐쇄되면서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공급망 차질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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