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美 최대 車수송 관문 볼티모어항 무기한 폐쇄 …물류 흐름 차질

입력 | 2024-03-27 19:52:00


“여기는 C13 파견! 다리 전체가 무너질 듯 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12초간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진 것은 26일 오전 1시 29분이었다. 미국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항만을 가로지르는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로 컨테이너선이 불을 깜빡거린 채 다가오다 교각에 충돌한 것을 본 교통당국 관계자의 신고였다. 경찰은 즉시 다리 양끝에서 진입 차량을 멈춰 세웠다. 1분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는 이날 싱가포르 국적의 ‘달리’호와 충돌한 뒤 20초 만에 주저앉았다. 다리 위에 있던 인부 8명이 수십 m 아래 퍼탭스코강으로 추락했다. 2명이 구조됐으나 실종된 6명 중 1명의 시신이 수습됐고 나머지도 사망했을 것으로 외신은 추정했다. 교통당국과 경찰의 발 빠른 대응이 없었더라면 사고는 자칫 더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미국 내 최대 자동차 수송 항구 겸 석탄 수송 2위 항구인 볼티모어항의 운영은 무기한 중단됐다. 미 동부 물류 활동이 앞으로 몇 달간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조종 능력 상실… 충돌 20초 만에 ‘와르르’

달리호는 길이 300m, 폭 48m에 약 9700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대형 선박이다. CNN,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달리호는 충돌 약 4분 전부터 배의 불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더니 교각으로 방향을 튼 뒤 1분 만에 충돌했다. 항만 관계자들이 배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닻을 내리고 왼쪽으로 방향타를 돌리도록 지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선원들은 충돌 직전에 당국에 “통제력을 상실했다”며 조난신호(Mayday call)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층 빌딩 높이의 대형 선박이 시속 14.8㎞로 교각을 들이받은 여파로 20초 만에 총 길이 2.6km 다리에서 56m 구간이 와르르 무너졌다. 브랜던 스콧 볼티모어 시장은 “다리가 저렇게 무너지는 것을 실제로 볼 줄 상상도 못했다. 마치 액션영화 장면 같았다”고 했다.

미 사이버·인프라보안국(CISA)은 사고 초기 조사 메모에서 “충돌 전 선박 추진체의 동력은 상실된 상태였다”고 파악한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비상 발전기로 선박의 조명은 다시 켜졌지만 엔진은 복구되지 않아 조종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이 선박은 2015년 현대중공업이 2015년 건조했다. 지난해 6월에도 추진체, 보조 기계 관련 결함을 지적받았다. 2016년 벨기에 앤트워프항에서도 충돌 사고를 냈다. 미 교통안전위원회가 곧 선박의 결함 여부를 포함해 사고 조사를 할 예정이다.

● “美동부 해안 오가는 물류 흐름 차질”

볼티모어항은 미 동부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핵심 물류 기지다. 지난해 800억 달러(약 107조 원에 이르는 5230만 t의 국제 화물을 처리한 물동량 기준 미 9위 항구다.

특히 지난해 자동차 및 소형트럭 약 84만7000대를 하역하며 미 최대 자동차 수출입 항구로 자리매김했다. 미 제너럴모터스(GM), 일본 도요타와 닛산, 독일 폭스바겐 등이 모두 이용한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석탄 수출의 27%를 수출한 석탄 수송 2위 항구이기도 하다. 다리 붕괴 전 최소 12척의 선박이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볼티모어항을 출항할 예정이었다.

볼티모어항과 이 다리를 이용하지 못하는 컨테이너선과 차량들이 대체 항구를 찾거나 우회로를 택하면 운송 시간 및 비용 증가, 병목 현상 등이 뒤따를 수 있다. 폭스바겐도 성명에서 “미 북·동부와 중부 대서양에 있는 미국 딜러들을 위해 차량 약 10만 대를 실어 보냈다”면서 “볼티모어항 인근 교통 경로가 변경돼 선적 처리 후 운송이 지연될 수 있다”고 공지했다. 다만 한국 산업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은 주로 미 서부 항구를 이용한다”며 국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가능한 한 빨리 이 항구를 다시 가동할 것이다. 5만 개의 일자리가 이 항구에 달려 있다”며 조만간 현장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또 “연방정부가 재건 비용 전액을 부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WSJ는 이번 사고와 비슷한 2018년 이탈리아 제노바 다리 붕괴 당시 2년 후 새 다리가 개통된 점을 들어 이번에 빨라도 재개통에 2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