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누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이다. 영어로는 비너스로 불린다. 반면 마르스는 전쟁의 신이다. 신화에서는 두 신이 사랑하는 사이로 나오지만, 만약 둘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르네상스 시대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는 베누스가 이긴다고 확신했던 듯하다.
보티첼리는 1485년경에 ‘베누스와 마르스’(1485년·사진)를 그렸다. 그림 속 두 신은 숲속 풀밭에서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마주하고 있다. 얇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베누스는 침착하고 또렷한 표정으로 먼 데를 응시하는 반면에 벌거벗은 마르스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마도 격렬한 싸움 후 혹은 사랑을 나눈 뒤 곯아떨어진 듯하다. 커플을 둘러싸고 있는 반인반수의 아기들은 사티로스들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정령들로 산양의 뿔과 다리를 가졌다. 이들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마르스의 투구와 갑옷, 무기를 가지고 놀고 있다.
보티첼리는 메디치 가문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피렌체 공국을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은 보티첼리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최고 권력자의 후원 덕에 보티첼리는 수많은 걸작을 남길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도 메디치 가문의 주문으로 탄생했다. 한데 이 그림에서 화가는 다른 그림과 달리 베누스에게 옷을 입히고 마르스를 누드로 그렸다. 아마도 메디치 가문 자녀의 결혼식을 기념하는 그림이라 그랬을 것이다. 신랑, 신부의 침실을 장식할 목적이다 보니 베누스는 아름답고 정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마르스는 근육질의 사랑꾼으로 표현했다. 마르스는 녹초가 된 건지 사티로스가 소라고둥으로 시끄럽게 깨우는데도 전혀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