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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현장]‘전공의 빠진’ 현장 목소리에도 답이 있을까

입력 | 2024-03-28 03:00:00


“필수의료 분야에서 지방 현장의 목소리를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뇌혈관 질환을 전문으로 다루는 지방의 한 유명 중소병원 원장은 “정부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토로했다. 요즘 젊은 의사들이 왜 필수의료를 지원하지 않는지, 왜 비수도권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2000명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해서도 “선언적 발표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교한 의료 정책 디자인이 필요한데 현재 나온 의료 정책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한덕수 국무총리가 26일 의료계와 진행한 의정 대화도 전공의와 교수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채 ‘반쪽짜리’ 대화로 진행됐다.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당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얘기일 텐데, 대학 총장과 병원장 등만 참석한 간담회 모습을 두고 의료계에선 ‘총선용 보여주기’ 아니냐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왔다.

문제의 답이 현장에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들어야 할 것은 최근 사직서를 내고 있는 의대 교수들, 휴학계를 낸 의대생, 한 달 이상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목소리다. 물론 첫술에 배부르진 않겠지만 현장 의사들과 우선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이 사태 해결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최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 등을 만나며 중재에 나선 것도 시도 자체는 좋다고 본다. 그런데 전공의들이 원하는 것이 정말 ‘의사 면허정지 처분 유예’였는지는 미지수다. 당장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인턴 대표는 “교수들이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며 “황당하다”고 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없던 것은 정부가 필수의료 패키지를 설명하는 21일 전문가 토론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은 전공의 처우 개선 논의를 위한 토론회였고 의대 교수, 병원장, 전문의 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정작 처우 개선의 주인공인 전공의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토론을 마친 후 정부는 25일 전공의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해 수련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전공의 문제를 풀기 위한 전담 조직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말 전공의들이 이런 정책을 원하는 건지, 또 현재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됐는지는 의문이다.

지방의 한 병원장은 “요즘 젊은 의사들 사이에선 ‘빨벌튀’(빨리 벌고 이 나라 튄다)란 말을 쓰더라”며 “왜 국내 최대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의 마취과 교수들이 단체로 사표를 내고, 서울대 의대 수석입학 수석졸업자가 전문의를 때려치우고 개업을 준비하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의사를 범죄자 취급할수록 오히려 병원으로 돌아갈 마음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병원을 떠난 혹은 떠나겠다는 의사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이번 사태에 대한 해법이 나올 것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