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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 명지대 바둑학과 “돌 던집니다”

입력 | 2024-03-28 03:00:00

내년 신입생 안뽑고 학과 폐지 결정
1997년 개설후 프로기사 19명 배출
젊은층서 관심 줄어 바둑인구 급감
“한국 바둑 경쟁력 하락” 반발도



동아일보DB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건 바둑밖에 없어요. 그 묘미가 큽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젠 노인들만 바둑을 두네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기원. 43년째 바둑을 두고 있다는 조원국 씨(73)의 말이다. 기원에는 노인 20명이 두세 명씩 모여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세계 유일의 바둑학과인 명지대 바둑학과가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했다. 명지대는 25일 교무회의를 열고 바둑학과 폐과를 결정했다고 27일 밝혔다.

1997년 개설된 명지대 바둑학과는 한종진 9단, 양건 9단, 이민진 8단 등 19명의 프로 기사를 배출했다. 올해 정원은 21명으로, 전체 재학생은 유학생을 포함해 100명이 넘는다. 하지만 학교 측은 경영 악화와 바둑을 두는 젊은층이 감소하는 이유 등으로 폐과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대한바둑협회에 따르면 바둑을 둘 줄 아는 인구의 추산 비율은 2000년 32%에서 올해 19.4%로 떨어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21억 원이었던 대한바둑협회 지원 예산을 올해 전액 삭감했다. 유튜브 ‘쇼츠’(1분 미만의 짧은 동영상) 등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바둑은 접근하기 어려운 취미로 통한다. 직장인 김도연 씨(26)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시대”라며 “별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서 머리 쓰며 해야 하는 바둑에는 관심이 잘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결정으로 인해 한국의 바둑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신진서 9단이 중국 상하이에서 끝내기 6연승으로 세계 바둑의 새 역사를 쓴 가운데, 이 흐름을 역행할 수 있다는 것. 학과 폐지 확정 이후 국내 바둑계에서는 이를 두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바둑학과 학생회장 김한결 씨(24)는 “학생들은 폐과 확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학생회 차원에서) 폐과 반대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둑학과 교수들 역시 이날 오후 1시 30분경 관련 회의를 열었다. 남치형 바둑학과 교수는 “일본, 중국 쪽에서 유학생들이 많이 오고 있는 상황에서 폐과를 결정한 게 굉장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명지대 바둑학과에는 독일과 프랑스, 브라질 등 세계 각국 출신 학생이 다녔다. 헝가리 출신의 한국기원 프로 초단인 디아나 사범도 유럽과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2005년 명지대로 유학 온 후 2008년 프로 기사가 됐다.

대한바둑협회는 27일 “바둑학과 진학을 희망하던 학생들의 꿈이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관련 기관과 협의해 대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