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입구 교량 선박 충돌로 붕괴 美동부 대서양 연결 핵심 물류기지… 작년 107조원 규모 국제화물 처리 항구 운영 언제 재개될지 불투명… 교량 붕괴로 美동부 육상교통도 타격
“여기는 C13 파견! 다리 전체가 무너질 듯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12초간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진 것은 26일 오전 1시 29분이었다. 미국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항만을 가로지르는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로 컨테이너선이 불을 깜빡거린 채 다가오다 교각에 충돌한 것을 본 교통당국 관계자의 신고였다. 경찰은 즉시 다리 양끝에서 진입 차량을 멈춰 세웠다. 1분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1977년 건설된 노후 교량인 이 다리는 이날 싱가포르 국적의 ‘달리’호와 충돌한 뒤 20초 만에 주저앉았다. 다리 위에 있던 인부 8명이 수십 m 아래 퍼탭스코강으로 추락했다. 2명이 구조됐으나 실종된 6명 중 1명의 시신이 수습됐고 나머지도 사망했을 것으로 외신은 추정했다. 교통 당국과 경찰의 발 빠른 대응이 없었더라면 사고는 자칫 더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
● 조종 능력 상실… 충돌 20초 만에 ‘와르르’
무너진 다리 26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해안경비대가 탄 작은 선박(오른쪽)이 이날 새벽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와 충돌한 대형 컨테이너선 ‘달리’호에 다가가고 있다. 이번 충돌로 미 최대 차량 수송항, 2위 석탄 수송항인 볼티모어항이 문을 닫은 가운데 다리 재개통에도 최소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물류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볼티모어=AP 뉴시스
고층 빌딩 높이의 대형 선박이 시속 14.8㎞로 교각을 들이받은 여파로 20초 만에 총 길이 2.6km 다리에서 56m 구간이 와르르 무너졌다. 47년 된 이 다리에 교각 보호물이 없었던 것도 피해를 키웠다. 브랜던 스콧 볼티모어 시장은 “다리가 저렇게 무너지는 것을 실제로 볼 줄 상상도 못했다. 마치 액션영화 장면 같았다”고 했다.
미 사이버·인프라보안국(CISA)은 사고 초기 조사 메모에서 “충돌 전 선박 추진체의 동력은 상실된 상태였다”고 파악한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비상 발전기로 선박의 조명은 다시 켜졌지만 엔진은 복구되지 않아 조종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 “美 동부 해안 오가는 물류 흐름 차질”
볼티모어항은 미 동부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핵심 물류 기지다. 지난해 800억 달러(약 107조 원에 이르는 5230만 t의 국제 화물을 처리한 물동량 기준 미 9위 항구다.
특히 지난해 자동차 및 소형트럭 약 84만7000대를 하역하며 미 최대 자동차 수출입 항구로 자리매김했다. 미 제너럴모터스(GM), 일본 도요타와 닛산, 독일 폭스바겐 등이 모두 이용한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석탄 수출의 27%를 수출한 석탄 수송 2위 항구이기도 하다. 다리 붕괴 전 최소 12척의 선박이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볼티모어항을 출항할 예정이었다.
볼티모어항과 이 다리를 이용하지 못하는 컨테이너선과 차량들이 대체 항구를 찾거나 우회로를 택하면 운송 시간 및 비용 증가, 병목 현상 등이 뒤따를 수 있다. 폭스바겐도 성명에서 “볼티모어항 인근 교통 경로가 변경돼 선적 처리 후 운송이 지연될 수 있다”고 공지했다. 다만 한국 산업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은 주로 미 서부 항구를 이용한다”며 국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