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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는 가수 비비의 ‘밤양갱’이 인기를 끌자 한정판 ‘비비×밤양갱’을 출시했다. 이마트 제공
제과업계 수장도 어깨춤을 추게 한 비비의 돌풍이 매섭다. 비비가 부르고 장기하가 쓴 ‘밤양갱’은 10주 차(3월 3~9일) 써클차트에서 디지털, 다운로드, 스트리밍 부문을 비롯해 7개 부문 1위에 올랐다.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해 나온 ‘밤양갱’은 아이유의 선공개곡 ‘Love wins all’을 1위 자리에서 밀어낸 뒤 정상을 지키고 있다. 스스로를 ‘나쁜X’라고 외치던 비비의 변신은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었다.
내가 원했던 건 우주선이 아니라 밤양갱
비비의 ‘밤양갱’은 ‘이지 리스닝’ 노래다. 쉽게 말해 듣기 편하다는 것. 8분의 6박자 왈츠풍의 리듬에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라고, 엇박자로 진입하는 비비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보기 좋게 얹힌다. 경쾌한 리듬과 달리 가사는 이별 얘기다.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 ‘그래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 너랑 나눈 날들 마무리했었지”
이어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디귿의 폭격이 시작된다.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혀끝이 입천장에 닿았다 목구멍으로 굴려지는 가사의 훅은 계속 ‘밤양갱’을 흥얼거리게 만든다. 수많은 스타도 ‘밤양갱’에 중독됐다. 이효리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밤양갱’을 부르는 영상을 SNS에 업로드했고, 권정열과 로이킴 등이 이에 가세했다. 그중 압권은 배우 황정민의 ‘밤양갱’. 한 유튜버는 그의 영화 속 대사를 재조합해 ‘밤양갱’ 멜로디에 얹었다. 이 영상은 조회수 300만을 넘어섰다. 김정은, 박명수, 아이유 등 AI 딥러닝 기능을 이용한 ‘AI 커버’ 버전도 유튜브에 수두룩하다.
비비의 ‘밤양갱’은 히트송을 넘어 밈이 됐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별이라는 통속적인 이야기에 ‘밤양갱’이라는 재밌는 소재를 이어 붙여 장기하 특유의 관점을 부여했다”며 “여기에 비비의 목소리가 입혀져 두 아티스트의 시너지가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지난해 틱톡에서 젊은 재즈 싱어송라이터들이 왈츠풍 음악으로 바이럴이 많이 됐다”며 “‘밤양갱’은 여기에 대중이 좋아하는 스토리텔링 가사가 입혀져 많은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밤양갱’의 히트는 제과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노래 공개 이후 주요 편의점에서 양갱 매출이 전달 대비 40% 상승했으며, 1992년부터 밤양갱을 출시해온 크라운제과는 비비와 컬래버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는 동네 마트에서 항상 세일하던 연양갱이 정가에 팔리기 시작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연양갱은 해태제과에서 1945년 내놓은 제품이다.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비비의 ‘밤양갱’ 특수에 신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밤양갱’ 돌풍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이돌의 전유물이 된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누아르 시대에서 사랑의 시대로
비비는 영화 ‘화란’으로 제76회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뉴스1
적극적인 퍼포먼스도 화제를 낳았다. 2021년 미국의 한 음악 페스티벌에서 담배와 콘돔을 소재로 쓴 ‘쉬가릿’을 부르며 관객들에게 콘돔을 뿌리기도 했다. 키스해달라는 팬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입을 맞추기도 할 만큼 팬 사랑에 진심이다. 작곡과 작사에 능하고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면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둠의 아이유’라는 별명도 만들어졌다.
비비 ‘가면무도회’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유튜브 캡처
‘Gen Z(Z세대)’ 비비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굳어지든 크게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열기로 한다. 데뷔 후 발표한 소위 ‘센 음악’을 ‘누아르 에라(era)’로, 2023년 8월 발표한 ‘홍대 R&B’부터는 ‘사랑의 에라’로 구분한다. 서정적인 풍의 ‘밤양갱’은 후자의 자장 속에서 발표한 노래다. 정 평론가는 “비비는 마이너한 콘셉트의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음악을 해왔다”며 “완성도가 높긴 했으나 대중이 쉽게 감상할 만한 음악은 아니었지만 ‘밤양갱’을 통해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비비의 새로운 챕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