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콜롬비아인이 본 韓日 관계[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입력 | 2024-03-28 23:24: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번 주말에 한국과 일본의 복잡한 관계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이 세 번 있었다.

먼저, 입소문을 듣고 본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다. 포스터도 그렇고 주인공 중 한 명이 배우 최민식이라서 스릴러 영화가 아닐까, 짐작했을 뿐 내용에 관해서는 사전 지식이 별로 없었다. 얼마 전 친구가 대화 중에 영화에서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을 언급하긴 했었다. 영화를 본 후 왜 친구가 그 장면을 언급했는지 알았다. 박찬욱 감독의 단편 영화 ‘파란만장’에서 보았던 무속 의식 장면만큼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두고 무속적 요소가 가미된 스릴러물이라거나, 아니면 언젠가부터 단골 소재가 된 좀비 영화일 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스릴러라거나 좀비 영화일 거라는 기대는 저버렸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첫째는 한국의 종교적 혼합주의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풍수사, 기독교인 장의사, 젊은 무속인과 그 제자가 하나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은 강요된 느낌이 없이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이들이 어떤 연유로 엮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점도 신파나 멜로 드라마의 상투적인 설정에서 벗어나게 하는 장치였다. 둘째, 임진왜란과 일제 식민 지배 역사를 공포 영화의 소재로 다룬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일본이 조선 땅의 요충지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전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영화를 보며 나는 철심 이야기가 그저 공포를 위한 장치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쇠말뚝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내게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반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자주 활용되는 초자연적 모티브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두 나라엔 공통점이 있는데 미신에 관해 강한 유대감을 가진다는 점이다. 영혼, 귀신, 도깨비가 때로는 설명할 수 없고 고통스러운 일이 왜 일어나는지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 이러한 유사점은 아시아 전반에 걸친 것일 수도 있다. ‘파묘’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같은 나라에서도 크게 흥행하고 있는데, 아시아처럼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진 지역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초자연적 사실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어떠한 교차점을 통해 현대에 호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기 전날, 일본에서 오신 번역가이자 교수인 부부를 만나 저녁을 함께 먹었다. 한국에는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유럽은 물론이고 남미에 관해서라면 통달한 분들이었지만 서울에는 처음 와 보았다고 했다. 쿠바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국전쟁과 중남미 문학의 관계를 연구하는 중이라 나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동안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임진왜란에 관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 그는 나에게 ‘이제야 이해된다’고 했다. 전쟁기념관과 임진왜란 책에서 본 한일의 오랜 애증의 역사가 한국 근대사에서 일부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의 의문을 푸는 데 실마리를 준 모양이었다. 그 말은 나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일요일 저녁에는 백남준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전 세계 예술계에 끼친 그의 절대적인 영향력과 중요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다큐멘터리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았지만, 백남준이 안고 있던 수많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 일본 전자공학자 아베 슈야와의 관계였다. 수년간 그들이 주고받은 격렬한 서신을 떠올리며 그가 없었다면 백남준의 커리어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63년부터 2005년까지 백남준과 아베가 주고받은 서신은 절박함과 유머가 함께 담겨 있었다. 예를 들어, 아베는 도쿄 방송 시스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도대체 어떤 일에 시간을 다 쓰고 있는지 상사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백남준과 암호를 만들었다. 그는 해고당했지만, 백남준은 그가 미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시아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에게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가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호기심과 존경, 그리고 마침내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한 한국인과 한 일본인 사이의 우정이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는 것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