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교수연구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해 25일부터 사직서 제출과 주 52시간 근무, 외래진료 축소 등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정부가 20일 내년도 대학별 의대 입학정원을 발표한 뒤 후폭풍이 거센 모습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장의 만남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의대 교수들은 ‘2000명 증원’ 방침이 안 바뀌자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의료계와 각 대학에 따르면 25일 오후 8시 기준으로 전국 의대 40곳 중 15곳에서 집단 사직서가 제출되기 시작했다. 물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바로 진료를 멈추는 건 아니다. 당분간 의대 교수들은 주 52시간 내에서 외래진료, 수술, 입원진료 등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환자들의 불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형병원의 경우 검사 날짜를 연기하거나 응급실에서 중증질환 환자가 아니면 안 받는 상황이 더 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의대 2000명 증원은 바꿀 수 없는 걸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구조조정에 따른 학과 개편과 정원 조정 등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승인이 있는 경우 변경할 수 있다. 사실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입학연도 1년 10개월 전 공표가 원칙인데 정부가 추진한 내년도 의대 증원도 여기에 해당돼 수정한 것이다. 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의대 정원을 10% 이상 증원한 30개 의대를 대상으로 의학교육 여건과 수행 정도를 평가한다. 평가에서 인증을 못 받으면 관련 법령에 따라 정원 감축과 모집 정지, 졸업생 의사국가고시 응시 불가 등의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물론 정부가 총선 후 2000명 증원 계획을 굽히지 않는다면 내년도 의대 정원은 5058명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 경우 정부는 현장 검증을 바탕으로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된다. 내년 초 부실한 교육과 관련해 수많은 잡음이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북대 의대의 한 교수는 최근 기자회견을 자청해 “학생 200명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수업 모습을 시연까지 했다.
특히 지방의 경우 기초교수와 조교를 구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학기 동안 배워야 할 의학 교과목을 다른 대학 의대 교수를 초청해 1, 2주 안에 가르쳐야 할 수도 있다. 파행적인 의대 교육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3년 뒤 임상 교육도 문제다. 병상이 적은 의대 부속병원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병원으로 의대생을 보내야 한다. 이 경우 정원이 한꺼번에 늘어난 의대들로 인해 파견 병원 확보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