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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2000명 이후

입력 | 2024-03-28 23:36:00

서울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교수연구동으로 들어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해 25일부터 사직서 제출과 주 52시간 근무, 외래진료 축소 등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정부가 20일 내년도 대학별 의대 입학정원을 발표한 뒤 후폭풍이 거센 모습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장의 만남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의대 교수들은 ‘2000명 증원’ 방침이 안 바뀌자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필자는 정부가 의대 정원 발표를 총선 이후로 미뤄 의료계와 타협의 여지를 남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계와의 갈등 표면화를 무릅쓰고 대학별 정원을 발표하는 강수를 뒀다.

의료계와 각 대학에 따르면 25일 오후 8시 기준으로 전국 의대 40곳 중 15곳에서 집단 사직서가 제출되기 시작했다. 물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바로 진료를 멈추는 건 아니다. 당분간 의대 교수들은 주 52시간 내에서 외래진료, 수술, 입원진료 등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환자들의 불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형병원의 경우 검사 날짜를 연기하거나 응급실에서 중증질환 환자가 아니면 안 받는 상황이 더 늘고 있다.

정부는 이미 대학별 배정이 끝난 만큼 2000명 증원을 뒤집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28조 3항에 따라 국가가 인력 수급과 관련해 정책적으로 결정한 사안이기 때문에 대학이 임의로 정원을 변경할 수 없다고도 했다. 대학들은 5월 말까지 변경된 의대 정원을 반영해 수정된 학칙과 전형계획, 수시모집 요강을 공개해야 된다.

그렇다면 정말 의대 2000명 증원은 바꿀 수 없는 걸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구조조정에 따른 학과 개편과 정원 조정 등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승인이 있는 경우 변경할 수 있다. 사실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입학연도 1년 10개월 전 공표가 원칙인데 정부가 추진한 내년도 의대 증원도 여기에 해당돼 수정한 것이다. 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의대 정원을 10% 이상 증원한 30개 의대를 대상으로 의학교육 여건과 수행 정도를 평가한다. 평가에서 인증을 못 받으면 관련 법령에 따라 정원 감축과 모집 정지, 졸업생 의사국가고시 응시 불가 등의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물론 정부가 총선 후 2000명 증원 계획을 굽히지 않는다면 내년도 의대 정원은 5058명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 경우 정부는 현장 검증을 바탕으로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된다. 내년 초 부실한 교육과 관련해 수많은 잡음이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북대 의대의 한 교수는 최근 기자회견을 자청해 “학생 200명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수업 모습을 시연까지 했다.

특히 지방의 경우 기초교수와 조교를 구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학기 동안 배워야 할 의학 교과목을 다른 대학 의대 교수를 초청해 1, 2주 안에 가르쳐야 할 수도 있다. 파행적인 의대 교육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3년 뒤 임상 교육도 문제다. 병상이 적은 의대 부속병원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병원으로 의대생을 보내야 한다. 이 경우 정원이 한꺼번에 늘어난 의대들로 인해 파견 병원 확보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잡음을 내면서 결정된 의대 증원이 5년 뒤 재평가를 통해 정원을 축소하거나 교수를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일은 다음 정부가 맡아야 하는 상황이라 현 정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늘리는 것보다 줄여 나가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5년 뒤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늘리거나 줄일지 의정합의체로 구성된 상설위원회를 통해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의대 교육은 누가 뭐라고 해도 100년 대계이기 때문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