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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이상훈]‘밀어붙이기’ 정책이 50년간 남긴 후유증

입력 | 2024-03-28 23:45:00

소통 외면하다 유혈충돌 부른 나리타공항 교훈
돌다리도 두들기는 日… 우리에겐 신중함 있나



이상훈 도쿄특파원


일본 수도권 관문인 나리타 국제공항은 일본에서 경찰 경비인력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올 1월 기준 출발-도착 3만4000여 회인 인천국제공항의 경찰 인력은 200여 명. 반면 월 발착 횟수 1만9000여 회인 나리타 공항은 3배 이상 많은 750명이다. 그나마 2010년대 1500명에서 반으로 줄어 이 정도다.

공항 고속도로 나들목, 버스 정류장 등에는 어김없이 철망을 두른 대형 경찰버스가 상주하고 있다. 공항 담장은 물론 인근 논밭에서도 경찰들이 허리까지 오는 진압봉을 든 채 눈을 부릅뜨고 24시간 감시한다.

삼엄하기 그지없는 나리타 공항의 경비 역사는 건설이 추진된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 일왕(日王) 일가의 목장이었던 부지 주변은 전기도 안 들어오던 빈민 거주지였다. 고도 성장으로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하던 일본은 지역민 반발이 적을 것으로 보고 이곳을 택했다. 상당수 지역민이 “협의가 전혀 없었다”고 반발했지만 강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며 땅을 일군 주민들의 반발은 갈수록 커졌다.

그사이 1960년대 학생운동으로 힘을 키운 극좌 세력이 이 주민들과 손을 잡았다. 전국에서 모인 과격파들이 화염병, 죽창, 낫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정부는 “개항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며 공권력을 동원했다. 시위대, 경찰 양쪽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터졌고 관제탑이 점거당해 개항 직전 공항이 마비됐다.

개항 후에도 총으로 구슬을 쏘는 무력 시위가 이어졌다. 심지어 개항 45년을 맞은 지난해에도 시위대가 점거한 토지를 강제 집행하다가 충돌이 빚어졌다. 그사이 공항 규모는 애초 계획 대비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아시아 허브공항 경쟁에서도 한국, 중국, 싱가포르 등에 뒤처졌다.

극단적인 투쟁이 남긴 상처는 크고 깊었다.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대화와 협의를 하지 않은 점을 자성했다. 강경하게 밀어붙인 게 오히려 반대파를 키웠다는 인식을 가졌다. 방침을 정하면 강제 진행이 당연시됐던 일본의 정책 추진 방식은 나리타 투쟁을 계기로 바뀌었다. 짧으면 수년, 길면 수십 년씩 주민을 설득하고 국회에서 정책 문구 하나하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처럼 30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지만, 500가구를 30년간 설득해 완성한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도 있다. 일본의 재무장 역시 수십 년에 걸쳐 안보문서를 고치고 동맹국 미국과 호흡을 맞추면서 이제는 미사일, 전투기를 수출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했다. 좌시하기 어려운 우경화 움직임이나 최소한 정책 방침을 세운 뒤 동맹국 의지와 국내 여론을 확인하며 진행하는 방식만큼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돌다리도 세 번, 네 번 두들기는 일본을 보면서 한국의 개혁에 그만한 신중함이 있는지 자문해 본다. 의료개혁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의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극단적 치킨 게임으로 가고 있다. 국민 상당수가 필요성에 공감했고 보수와 진보가 모처럼 서로 손가락질하지 않았던 정책인데도 갈수록 정부의 ‘불통 이미지’만 쌓여가고 있다. 대화가 사라진 빈자리가 혼란으로 채워지는 전형적인 갈등 증폭 양상이 됐다.

시간과 공을 들이지 않고 밀어붙이는 정책은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다. 나리타 공항 반대 투쟁에서 일본이 배운 뼈저린 교훈이다. 우리라고 예외일 순 없다.




이상훈 도쿄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