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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장택동]‘공관 주재관에 갑질’ 신고당한 주중대사

입력 | 2024-03-28 23:48:00


미중일러 ‘4강’ 대사는 전직 총리나 장관, 중진 의원, 고위 외교관 등이 주로 임명되는 자리다. 그만큼 외교적 비중이 크고 공관 직원, 교민 관리도 중요해서다. 그런데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가 부하 직원에게 갑질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외교부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소규모 해외공관에서는 간혹 벌어지는 일이지만 4강 대사에게 갑질 논란이 제기된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베이징 주중대사관에 근무 중인 주재관 A 씨는 이달 초 ‘정 대사에게서 폭언을 들었다’며 정 대사의 발언을 녹음해 외교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A 씨는 다른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으로, 정 대사가 수차례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사는 “일방의 주장”이라고 반박했고, 의혹의 진위는 조사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하지만 대사의 입이 문제가 돼 갑질 신고가 접수됐고,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는 것 자체가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는 2022년 8월 윤석열 정부 초대 주중대사로 발탁됐다. 학자가 4강 대사로 직행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업무 수행을 놓고 구설이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지 특파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월례 브리핑 방식이다. 미리 이메일로 받은 질문에 한해 준비된 답변만 읽고 끝낸다. 취임 직후 특파원 간담회에서 일부 언론이 정 대사의 발언을 ‘관계자’가 아닌 ‘실명’으로 보도한 것에 항의하며 이런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은 공직자이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정 대사가 중국 정부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취임 이후 10개월간 네트워크 구축비를 이용해 중국 외교부와 접촉한 것은 단 1건뿐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대거 강제 북송했을 때도 대사관은 모르고 있었다. 대사 취임 일성으로 “무엇보다 한중 간 안정적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던 그의 다짐이 무색하다. 중국통인 그가 외교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목소리도 이제는 쏙 들어갔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지난해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쓴 중국 관영매체들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이를 국내 언론에 공개해 중국 측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외교가에선 한중 관계가 냉각된 상황이지만 중국에 할 말은 하되 조용히, 효과적으로 전달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재임 1년 반 동안 대중 외교에서 우군이 돼야 할 직원, 언론, 교민도 끌어안지 못한 듯하다. 학자로서는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라지만 외교관으로서의 자질에는 큰 의문부호가 남는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