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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이 지나도 감동을 주는 그림 속 아기의 손짓[영감 한 스푼]

입력 | 2024-03-29 10:00:00


프란스 할스, 유모와 함께 있는 카타리나 호프트, 1619~1620년. Staatliche Museen zu Berlin, Gemaldegalerie. 사진 레익스미술관 제공.


오늘 뉴스레터는 ‘프란스 할스’ 회고전 큐레이터 인터뷰 마지막편입니다. 프리소 라메르처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달라고 했을 때 그는 위의 어린 아기가 그려진 그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림에서 기대하는 감동은 무엇인지, 또 수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까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어 지난 2주간 자세한 내용을 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초상화처럼 공들인 할스의 풍속화



할스는 거리의 인물을 깊이 끌어당겨서 초상화처럼 그려요. 이 때문에 우리는 그림 속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작게 그리면 감정을 알기 어렵잖아요. 그러니 할스가 소년 어부 같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프란스 할스, 소년 어부, 1638년 경. Royal Museum of Fine Arts Antwerp - Flemish Community. 사진 레익스미술관 제공.


술 취한 사람, 물고기 잡는 어부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그린 프란스 할스의 장르화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풍속화는 네덜란드 그림에 꽤 오래된 전통이기도 합니다.

- 풍속화 같은 일상의 장면, 그러니까 ‘장르화’라고 하죠. 그런 주제는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의 특징이기도 하잖아요. 할스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요?

“맞아요. 장르화는 16세기 네덜란드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스는 이런 장르화를 일종의 초상화처럼 그립니다. 이 장르화들은 주문 받은 게 아님에도 초상화처럼 공들여 그려요. 거기서 알 수 있는 건 ‘할스가 이런 평범한 사람들도 아주 진지하게 보고 있다’하는 점입니다.

약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뉘앙스는 있지만 그것이 캐리커처의 수준까지 내려가진 않아요. 그러면서 인물들을 아주 깊이 끌어당겨서 초상화처럼 그리죠. 이 때문에 우리는 그림 속 사람들과 인간적으로 공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작게 그리면 감정을 알기 어렵잖아요. 그러니 할스가 소년 어부 같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그럼 할스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감각이 있어요. 소년 어부뿐 아니라 다른 그림에서도요. 하지만 21세기 관점에서 따뜻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프란스 할스, 말레 바베, 1640년 경.  Staatliche Museen zu Berlin, Gemaldegalerie. 사진 레익스미술관 제공.


‘말레 바베’(할스가 살던 지역에서 유명했던 알콜중독자 혹은 정신이상자를 그린 그림)를 보면 할스는 그녀를 정말로 아름답게 그리지만, 어깨에 부엉이를 놓았어요. 이 부엉이는 그녀가 ‘바보’(fool)임을 상징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표현은 용납되지 않죠.

그러니까 할스는 17세기 사람이었고, 이 시대에 바보는 바보라고 놀림 받았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 시대의 맥락에서 있는 따스한 감성은 느낄 수 있죠.

‘북치는 남자’(the Rommel-Pot Player)의 주인공도 정신 장애가 있는 인물이거든요. 그를 둘러싼 아이들은 즐겁게 웃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바보를 에워싸고 놀리고 있는 거기도 해요. 그러니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죠.

- 그러니까 장애인을 향한 짓궂은 농담도 담겨 있는 거군요.

그렇죠. 그럼에도 인물들의 얼굴은 매우 아름답게, 공을 들여 그렸어요. 21세기의 관점을 할스가 알 수는 없었겠죠. 그럼에도 시대를 뛰어 넘는 가치나 휴머니티, 이런 것을 할스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오래 전 그림 앞에 서면 그것이 가진 수백 년 수천 년의 세월에 내가 작아지는 걸 느껴요.

그런데 동시에 (아주 사소한 아기의 손짓처럼)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무언가가 있고, 나도 그걸 갖고 있으며, 내 뒤로도 그게 이어질 것임을 알면 다시 내가 큰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미술사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것이죠.

프란스 할스, 북치는 남자(the Rommel-Pot Player), 1620년 경, Kimbell Art Museum, Fort Worth, Texas. 사진 레익스미술관 제공.



- 전시된 모든 작품이 각자의 매력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저한테 가장 감동을 준 작품은 ‘유모와 함께 있는 카타리나 호프트’에요. 할스가 아주 감각적인 사람임을 보여주는 그림이거든요. 또 인간적이고 친밀한 감성이 드러나는데, 결국 이런 것이 제 취향엔 맞는 것 같아요. 전시된 작품 중 하나를 집에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작품을 선택할 거에요.”

- 아기가 입고 있는 옷의 디테일 표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것도 있지만, 아기의 부드러운 미소와 손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에요. 아이와 유모가 서로 친하고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지만, 한편으로 아기는 유모를 손으로 밀어내고 있어요. 실제로 어린 아기들은 이런 행동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아기가 입은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는 17세기의 것이지만, 두 사람의 눈길과 손짓은 인간이라면 수백 년이 지나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 감동적이죠.”


유모를 밀어내는 아기의 작고 귀여운 오른손. 프란스 할스, 유모와 함께 있는 카타리나 호프트, 1619~1620년. Staatliche Museen zu Berlin, Gemaldegalerie. 사진 레익스미술관 제공.


- 맞아요. 아주 인간적인 모습이에요.

“네 아주 인간적인. 이런 인간적인 모습들이 드러나기에 수백 년 전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미술사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것이죠.

오래 전 그림 앞에 서면 그것이 가진 수백 년 수천 년의 세월에 내가 작아지는 걸 느껴요.

그런데 동시에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지켜온 무언가가 있고, 나도 그걸 갖고 있으며, 이것이 내 뒤로도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내가 다시 커지는 걸 느끼니까요.

결국엔 그런 인간적인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수많은 초상화들이 권력이나 부를 과시하려 노력했는데 결국 남는 건 소박해 보이는 인간성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이것이 결국 인상파를 넘어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 주었잖아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에요.

할스는 왕이나 도시의 평범한 사람들이나 동등하게 바라보고 그렸어요. 왕이 얼마나 권력이 있는지를 과시하는 데 할스는 분명 관심이 없었고, 다른 무언가를 찾으려 했죠.

그런 노력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또 감동까지 주고 있습니다.”

- 2024년의 관객이 이 전시를 보고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요?

“인류의 전통이요. 결국 우리 모두는 인간이잖아요.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은 결국 그림이다. 인간이 만든 것이다라는 걸 봤으면 좋겠어요.

- 그림들의 느슨한 붓터치는 ‘결국 나는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에 불과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담고 있고, 그런데 결국 그림은 그림일 뿐이고….

“할스가 이런 역설을 즐긴다고 봐요. 예술의 핵심은 언제나 무언가 만들고 그것으로 감정을 촉발하는 거잖아요.

느슨한 붓터치 때문에 우리는 이게 회화임을 알 수 있죠. 결국 그림은 사람이 만든 거예요. 그런데 그 안의 내용은 아주 인간적인 것들이고, 이것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와요.

현대미술은 캔버스 말고도 엄청나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결국 그 작품들이 하고 싶은 것도 인간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듯…

제가 미술사를 공부하며 갖게 된 관점이 있어요. 과학에서 누군가 연구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 듯, 예술이라는 분야도 사람이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에요.

이 전시에 깔린 저의 믿음은, ‘사람의 가능성이 얼마나 무한한가’입니다. 400년이 지나도 그림 속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처럼이요.“


‘프란스 할스’ 전의 공동 큐레이터 프리소 라메르처. 사진 레익스미술관 제공.



🔖프란스 할스 인터뷰 시리즈 다시보기
‘진주 귀걸이’ 페르메이르에 이어 뜨거운 관심 받는 ‘이 작가’반 고흐와 휘슬러를 매료시킨 일상과 붓터치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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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