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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한미 통합 불발…임家네 사촌들이 판 뒤집었다 [시장팀의 마켓워치]

입력 | 2024-03-29 15:29:00


한미약품 사옥 전경


이동훈 기자


‘한국형 LVMH’ 탄생을 꿈꿨던 OCI홀딩스와 한미그룹 간 이종 사업 통합이 최종 불발됐습니다. 한미그룹 모녀(송영숙 회장·임주현 사장)와 형제(임종윤 사장·임종훈 사장)의 ‘집안싸움’이 펼쳐졌던 가운데 임 씨 남매의 사촌들이 형제 측에 힘을 보태면서 2개월 여간의 경영권 지분 대결이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28일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가 열리기 직전까지도 외부에서는 승리를 예측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막판까지 양측에서 굵직한 이벤트들이 터지면서 승리의 무게 추가 왔다 갔다 했기 때문입니다.

첫 공세는 형제들이었습니다. 주총을 일주일 남긴 지난 22일 단일 주주로는 송 회장에 이어 2대 주주였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15%)이 형제 측을 지지하면서 40% 안팎의 지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간 침묵하던 신 회장의 깜짝 등장은 송 회장 모녀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법원과 국민연금이 모녀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대결 막판에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지난 26일 법원은 형제 측이 OCI홀딩스와 한미그룹의 통합을 반대하면서 제기한 신주발행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같은 날 한미사이언스 지분 7.66%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모녀 측이 이사회에 제시한 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하기로 했다는 ‘의결권 행사 지침’을 밝혔습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한미사이언스 주총이었지만, 시작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습니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정작 주인공인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건강상의 문제로 불참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임종윤 사장과 임종호 사장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때부터 형제 측이 이긴 게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최종 투표 결과 이사 후보 5명 모두를 이사회에 진입시킨 형제 측의 완승이었습니다. 형제 측 이사들이 52%의 찬성을 받은 것과 달리, 송 회장 모녀 측이 추천한 이사 후보들은 48% 득표에 그치면서 이사회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형제 측은 총 9명의 이사 중 최소 5명을 확보했고, 경영권도 행사하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형제 측에서 반대하던 OCI홀딩스와의 통합 작업도 무산됐습니다. 이우현 회장은 29일 열린 OCI홀딩스 주총에서 형제 측과 함께 할 생각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한미사이언스와의 통합 작업이 끝났다고 밝혔습니다.

막판 4%포인트 격차를 만든 것은 임 씨 남매들의 사촌들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고(故) 임성기 회장의 형님 측 자녀들이 형제 측에 가세한 것입니다. 이들이 보유한 지분은 약 3.2%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애초 송 회장 모녀 측은 사촌들이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주거나 기권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주총 막판 극적으로 형제 쪽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각에서는 송 회장 모녀가 사촌들이 형제 측에 합류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추정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소액 주주의 표심도 형제 측에 조금 더 기울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한미사이언스 주총 결과를 두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OCI와 한미그룹의 통합을 지지하는 측은 한국에서 첫 이종 사업간 결합이 나올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반응입니다. 또, 임 회장 사망 이후 형제 측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이들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통합 반대 측에서는 송 회장 모녀 측이 회사를 맡은 이후 회사 가치가 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가도 하락했지만, 회사 내 핵심 연구·개발(R&D) 인력들이 유출됐다며 비판합니다. OCI 그룹과의 통합에 대해서도 한미그룹에 손해가 된다는 입장입니다.

한미사이언스 주총 결과 승자와 패자가 나왔습니다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번 경영권 분쟁의 핵심인 상속세 이슈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임 회장이 사망하면서 송 회장과 임 씨 남매들에게 부과된 상속세만 5400억 원에 달했습니다. 현재까지 3200억 원가량을 냈고, 내년까지 2200억 원을 더 내야 합니다. 이 중 송 회장의 미납금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상속세는 연대 납부의 의무가 있어 모두가 함께 상속세를 내야 합니다. 또, 상속세 납부를 위해 누군가 지분을 대거 처분할 경우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임 씨 형제가 경영권을 확보한 후에도 송 회장 모녀에게 손을 내미는 이유입니다.

한미그룹의 자금 부족도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한미사이언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상품은 336억 원, 한미약품은 550억 원 정도입니다. 매년 신약 개발비가 수천억 원 투입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임종윤 사장 측이 1조 원가량의 자금 유치를 약속했는데, 실제 이뤄질지도 관건입니다. 한미사이언스의 주총은 끝났지만, 회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