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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소 5곳중 4곳 제재없이 접근…현장 지키는 인원도 없어

입력 | 2024-03-29 20:04:00


29일 오전 11시경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주민센터 2층 다목적회의실. 사전투표 장소지만 특별한 제지 없이 열린 문으로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29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주민센터 3층 다목적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사전투표소 장소로 안내돼 있는 이곳엔 현장을 지키는 인원은 한 명도 없었다. 전날 선관위로부터 불법 카메라 점검 등 투표소 관리에 대한 지침이 내려왔지만, 외부인 출입에 대한 통제는 없었다. 사전투표소 내부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있었지만 건물 밖에서 문 앞까지 접근해 손잡이를 돌려봐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다음달 5, 6일 실시되는 4·10총선 사전투표가 8일 앞으로 다가온 이날 서울과 인천, 부산, 경남 양산, 울산 등 전국 총 18곳의 사전투표소와 개표소, 본투표소 등에서 불법 카메라가 발견됐다. 하지만 이날도 여전히 사전투표소가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이 일었지만 투표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29일 오후 1시경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본동주민센터 4층 대강당. 문은 굳게 닫혀있었지만 4층으로 올라오는 동안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 긴급 점검해 본 5곳 중 4곳 ‘뻥 뚫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날 서울 서대문구, 마포구, 영등포구 일대 사전투표소 5곳을 점검한 결과 4곳은 사전투표소 입구까지 아무런 통제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신촌주민센터 1곳만 ‘사전투표소 장소’라고 안내문을 써붙이고 외부 철문을 잠가 접근을 막고 있었다. 사전투표소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 대흥동주민센터 지하 1층에 있는 공간은 문이 잠겨있었지만 유리문 너머로 투표안내문과 선거공보 발송봉투 등 선거 관련 물품을 밖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은 사전투표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영등포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주민 한모 씨(72)는 “사전투표소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전투표를 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9일 4·10총선 전국 사전투표소에서 불법 카메라 발견이 잇따르고 있다. 양산에서는 사전투표소와 개표소 등 6곳에서 각 1개씩 불법 카메라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사진은 경남 양산시 덕계동 행정복지센터 사전투표소에서 발견된 불법 카메라. 경남경찰청 제공

사전투표소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하다 28일 경찰에 붙잡힌 극우 성향 유튜버 한모 씨(49)는 2020년 21대 총선부터 양산 지역 내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한 씨는 이달 11일 양산 주민센터 4곳에서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20일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인천 계양구 선관위에 방문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모습을 직접 올리기까지 했다. 그는 선관위 관계자에게 “투표소 안에 왜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며 안 되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 서로 책임 미루는 선관위·지자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센터 등 관공서가 있는 건물의 경우 투표설비가 설치되기 전에는 각 지자체에 관리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는 사전투표 전날 투표소를 설치할 때 건물의 관리자와 선관위가 함께 시설 전반을 살펴본다”며 “이번 같은 경우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건물에 불법 카메라가 발견이 돼서 전수조사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지자체는 “선관위에서 사전에 투표소를 어떻게 관리해야 한다는 명확한 지침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각 지자체와 지역선관위가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도 정확한 상황을 언론 보도를 보고 파악하는 중”이라고 했다.

경남 양산시 물급읍 행정복지센터에서 발견된 불법 카메라 사진. 독자 제공

사전투표소에 대한 명확한 관리 책임이 현행법상 명시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사전투표소가 설치될 장소에 대해 관리주체와 선관위가 미리 협의를 하고 일반에 공고를 하도록 돼 있을 뿐 관리 책임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없다.

사전투표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대선의 사전투표 당시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선거 사무원들이 소쿠리나 쇼핑백에 담아 옮겨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사전투표 부정선거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선관위는 뒤늦게 개표과정에 수검표 절차를 추가하고 사전·우편투표함 보관장소의 폐쇄회로(CC)TV를 시·도 선관위 청사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24시간 공개해 신뢰성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뒷북 대처를 할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가 지금부터라도 주도적으로 사전투표소 주변을 24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