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북핵위기 당시 협상 뒷얘기 “기존 핵시설 폐기 등 김일성 구상” 외교부, 30년만에 외교문서 공개
“야구 경기에 비유하면 초구에 들어온 커브볼처럼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제1차 북핵위기 때인 1993년 7월, 당시 북-미 고위급 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차관보(사진)는 주제네바 한국대사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제시한 ‘경수로 카드’ 관련해 이런 속내를 털어놓은 것. 외교부는 29일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외교문서 2306권(약 37만여 쪽)을 공개했다. 이 문서들은 생산된 지 30년이 지나 비밀 해제됐다. 특히 이번 해제 문서에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1차 북핵위기 당시 북-미 간 협상 내용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문서에 따르면 갈루치 차관보는 1993년 6월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3차례 고위급 회담 후 우리 정부에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이 경수로 제안이 ‘김일성의 구상’이라고 했다. 갈루치 차관보는 또 “(북한이) 현재 운용 중인 원자로, 건설 중인 원자로 및 핵무기 시설(재처리시설)을 모두 폐기할 용의를 표했다”며 “북측 제안은 핵 비확산을 향한 진전(development)으로 볼 수 있으므로 나쁘지 않은 걸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번 문서에선 한미가 북한의 NPT 탈퇴를 막기 위해 1993년 11월 팀스피릿 연합훈련에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북한을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도 확인됐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