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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날인데 카메라를 향해 웃지 않는 수석 졸업생[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4-03-30 13:00:00

변영욱의 백년사진 No. 54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넘쳐나는 오늘을 살면서,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한 장씩 살펴봅니다. 독자들의 댓글을 통해 우리 이미지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 지난 주 소개드렸던 ‘백년사진 No. 54-졸업식에서 학사모를 던지는 사진은 언제부터 찍기 시작했을까?’ 글에서 설명드렸듯이 100년 전 3월은 졸업시즌이었고 신문에는 각 학교의 우등생 얼굴 사진이 실렸습니다. 이번 주에도 많은 학교의 우수 졸업생 얼굴이 실렸습니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의 얼굴이 있어 소개합니다. 1924년 3월 28일 자 동아일보 지면입니다.

오른편으로부터 윤봉허군 유진오군 허남하군/ 1924년 3월 28일자 동아일보




■ 학생의 기쁜 날
제일고보졸업 – 우등생이 3명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졸업식은 예정과 같이 26일 오후 1시경에 그 학교 강당 안에서 거행하였다. 다수의 내빈과 학부형이 참석 한 후 식을 열고 증서 수여와 교장의 훈사와 총독 대리로 남궁영씨의 고사와 졸업생 대표의 답사 등으로 식을 마치었는데 이번 졸업생은 도합 98명으로 그 중에 신교육령에 의한 졸업생이 38명이오 사범과 졸업생이 16명이오 보습과 졸업생이 11명이라 하며 우등생은 윤봉헌 유진오 허남하 등 세명이라더라.

가운데 유진오 학생은 이 사진이 찍힌 지 24년이 지난 1948년 헌법학자로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를 만들며 해방 후에는 신민당 당수까지 역임하는 정치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윤봉허 군과 허남하 군에 대해서는 제 수준에서는 검색이 잘 안되었습니다. 혹시 독자분들 중에 알고 계시는 내용이 있으시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사진을 하나 더 보시죠. 1924년 3월 27일자 신문입니다. 지금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운영한 의학전문학교 졸업식이 있었군요.



◇사진 설명 / 위의 남자 우등생 오른편으로부터 세부란스 의전의 리익수군 경성의학전문학교의 리희우군 중미진군 수원농림의 황운성군 김호직 군여자 우등생 1 강영선양 2양경숙양 3주리석양 4 전재환양 5 김필순양(이상 동덕학교) 6 박량순양 7리복수양 8김온혜양 9 오기양양 10이장례양 11최현숙양 12주수원양/ 1924년 3월 27일자 동아일보


내용은 이렇습니다.


■학생의 기쁜 날
세부의학전문 졸업 – 졸업생이 6명


남대문 밖에 있는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서는 재작 25일 오후 2시 30분에 졸업식을 거행하였는데 순서를 따라 교수의 연설과 총독 축사 내빈 축사와 졸업생 김승렴 군의 답사로 식을 마치었다. 이 학교는 미국 선교사의 경영으로 조선의 학계에 공헌이 많았고 당국의 지정으로 이 학교를 졸업하면 자유로 개업할 수 있게 되었다 하며 금년에는 졸업생 여섯명을 내이었는데 일번은 리익수 군이라더라.


수원고등농림 – 조선인 우등생 두명
정신여학교 – 우등생이 일곱 명




▶ 당시 신문은 [학생의 기쁜 날]이라는 고정 코너를 만들어 각 학교 우등생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고 이끌고 갈 재목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저의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온 부분은 표정이었습니다. 수십 명의 학생들 얼굴이 신문에 실리는데 표정이 이상합니다. 젊은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학생의 기쁜 날]이라는 제목과 어쩌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100년 전 이렇게 훌륭한 학생들의 사진에서 왜 웃음이 표현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사진기자인 제가 요즈음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주문이 ‘웃어보세요, 웃어주세요’일 것입니다. 이는 단순하게 현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즐거움과 긍정적인 순간들을 포착하고자 하고 싶어서 입니다. 무뚝뚝한 것보다는 웃는 표정이 훨씬 보기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소개드리는 사진 속 인물들이 웃지 않고 있는 이유는, 우선 그 당시 사진기자들이 학생들에게 웃어보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혹시 기술의 문제는 아니었을까요? 카메라가 처음 나왔던 1800년대에는 지금처럼 빠른 스피드로 셔터를 끊으면 필름에 상이 맺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델들은 사진가의 요구에 따라 몇 초가량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했습니다. 병원에서 우리가 X레이를 찍을 때 숨을 멈추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X레이의 셔터 스피드가 고속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웃는 상태로 정지하는 것보다는 무표정하게 정지해 있는 게 쉽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사진에서는 웃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방금 본 사진은 1924년도 사진이고 이때는 다른 지면에 실렸던 사진처럼(1924년 4월 2일), 이미 한강변에서 열렸던 경마 대회에서 번호표를 단 채 달리고 있는 말의 모습이 신문에 실리던시절이었습니다. 요즘 경마 사진을 찍을 때 사진기자가 세팅하는 셔터 스피드는 1/1000초 전후입니다. 1초를 1000개로 나눈 순간을 포착하겠다고 카메라에 지시하는 것이죠. 100년 전에 그 정도의 빠른 셔터 스피드를 지원하는 카메라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1초를 백 단위로 쪼갤 정도의 기술 수준은 있었습니다. 웃음을 포착하기에 충분한 속도인 것이죠.
게다가 1900년도에 코닥이 1$짜리(지금으로는 30$ 전후가 될 거 같습니다) 카메라를 출시하면서 내걸었던 광고 내용이 ‘사진이 기쁨과 행복을 포착하는 수단’이었다고 합니다. 누구나 가볍게 스냅 촬영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죠. 물론 미국과 한국의 경제 상황이 달랐으니 한국 당시 조선에서 카메라가 대중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일반인들이 살 수 있는 카메라에 비해 기능이 뛰어난 신문사 카메라로 미소의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에는 치아 보건 상태가 현재보다 좋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것을 꺼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으면서 ‘김치’를 외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하는 기사가 있어 공유합니다. 재밌는 내용입니다.
https://www.todayifoundout.com/index.php/2013/04/the-origin-of-say-cheese-and-when-people-started-smiling-in-photographs/

▶그런데 치아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저렇게 모든 학생들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는 다른 요인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위 기사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제 상상력을 좀 덧붙여봅니다.
학생들이 웃지 않고 심각한 표정을 한 채로 등장하는 사진의 배경에는 문화나 사회 분위기 탓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는 무언의 공감대 같은 거 말입니다. 굳은 표정이 주는 점잖음과 신중함이 있지 않나요? 정중한 표정이 그 사회의 중요한 가치이고 예의일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분위기라면 사진기자들도 기교를 부려 억지로 웃게 하는 것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찍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괜히 웃는 사진을 찍어봤자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게 더 힘들었을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식민지 시대라는 배경의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웃을 일이 별로 없던 시절이니 신문 속 얼굴도 그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오늘은 100년 전 서울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수재들의 얼굴 사진에서 웃음이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술적 제약보다는, 당시의 사회적 에티켓이나 건강상태 정도의 영향을 받아 오늘과는 다른 사진이 정답으로 인식되었을 거라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졸업식이라는 중요하고 기쁜 순간에도 그들이 느끼는 책임감과 시대의 무게가 사진 속 표정에 드러난 것 같아 보는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특히 X레이의 셔터 속도에 대해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세요. 제가 알고 있기론 1/30초 정도인데 이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백년사진]은 매주 토요일 1시경에 인터넷에 포스팅 될 거 같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