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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성장률 ―2%, 우크라 ―29%… 전쟁 벌어진 영토가 더 ‘경제 초토화’[권오상의 전쟁으로 읽는 경제]

입력 | 2024-03-31 23:30:00

러시아-우크라 전쟁의 경제학




교전 중인 양국 중 자국 영토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의 경제 타격이 훨씬 더 크다. 사진은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의 헤르손 거리.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제 2년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 물론 러시아는 이를 전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용어로는 그저 ‘특수군사 작전’일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개전 당시 소련은 자신의 폴란드 침공을 가리켜 ‘붉은 군대의 해방 운동’이라고 불렀다. 부대 식별 마크가 없는 일명 ‘리틀 그린맨’의 크림반도 점령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으로 보면 이 전쟁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전쟁과 경제는 서로 간에 주고받는 게 많은 밀접한 관계다. 반드시 개입되는 건 아닐지언정 경제적 고려는 전쟁을 벌이는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즉 국가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혹은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무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심지어 종교적 전쟁의 대표 격인 십자군 전쟁도 알고 보면 경제적 이익이 숨은 동기였다는 해석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경제는 국가가 전쟁을 지속하는 데에 핵심적인 경계 조건으로 작용한다. 가령 18세기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에는 “오늘날의 전쟁에선 무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크므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국가가 유리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른바 경제학의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손’만 말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또 전쟁의 역사에서 굵직한 획을 그은 나폴레옹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공히 “군대는 배가 든든해야 행군한다”고 봤다.

그렇다고 전쟁과 경제의 관계를 단순하다고 쉬이 치부할 건 아니다. 경제와 무관한 전쟁도 있을뿐더러 그 둘의 사이가 통상의 이해를 넘어서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요즘은 ‘경제전쟁’이라는 말도 쓴다. 국가 간의 경제적 대결을 총성 없는 전쟁의 연속으로 인식하는 탓이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전쟁이 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이름하여 ‘전쟁의 철칙’이다. 국내총생산(GDP)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아는 그들에게는 당연한 결론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과 희생된 목숨은 GDP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부서진 건물을 다시 건설하는 데 쓴 돈은 GDP를 높인다. 불황을 극복하려면 전쟁을 일으키면 된다는 끔찍한 주장은 여기서 멀지 않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제학 전공자 여럿으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GDP는 한 나라의 경제를 평가할 때 중요하게 취급된다. 이로부터 경제성장률이 계산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문제가 많은 지표다. 1년 동안 국가별로 생산돼 팔린 재화와 서비스의 총액인 까닭이다. GDP만 가지고는 그 돈이 어떻게 나누어졌는가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 다른 문제도 있다. GDP는 돈 받고 팔린 재화와 서비스만을 셈할 뿐이다.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라 해도 거래되지 않으면 관심 밖이다. 그래서 “엄마가 전업주부가 돼 집안 살림을 도맡으면 GDP는 떨어지지만 돈 받고 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쓰면 GDP가 올라간다”는 말에는 틀림이 없다.

국내총생산(GDP) 개념을 고안해낸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GDP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맞선 영국의 전차, 전투기, 군함의 생산량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지표였다. 동아일보DB

이처럼 중요한 GDP를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케인스는 모든 경제학자 중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 명을 꼽으라면 그 안에 드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범상치 않은 지적 능력을 보인 케인스는 케임브리지대를 다닐 때 이름난 동아리인 ‘사도들’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경제학에 큰 족적을 남긴 케인스지만 사실 그의 공식적인 학력은 학부 졸업이 전부다. 심지어 학사 학위를 받은 전공도 경제학이 아닌 수학이다. 정말 뛰어난 경제학자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경제학의 아이러니한 전통과 부합하는 결과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나머지 두 명도 사정은 같다.

경제학자로서 케인스의 명성은 1936년에 출간한 저서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에 기인한다. 그 책에는 “만약 재무부가 낡은 병에 지폐를 가득 채워서 폐광 깊숙이 묻고 쓰레기 더미로 덮은 다음, 이후 성숙한 자유방임주의 원칙에 따라 민간 기업에 그것을 다시 파내라고 하면, 더 이상 실업은 없어지고 그 파급 효과로 공동체의 실질 소득과 재산이 실제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될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케인스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을 때 국가가 그들의 소득을 만들어 주는 게 경제를 좋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을 일으켜 불황을 극복하자는 안락의자 이론가보다는 그가 확실히 아는 게 많았다.

1차대전 후 베르사유 조약 협상 때 영국 대표단의 실무자였던 케인스는 독일에 너무 많은 전쟁 배상금을 물리면 안 된다고 극렬히 반대했다. 그렇게 하면 독일의 경제가 망가져 결국엔 그 부메랑이 승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에 돌아온다는 거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케인스는 항의의 표시로 영국 정부에 사직서를 냈다. 케인스의 혜안은 1930년대 나치의 등장과 2차대전의 발발로 증명됐다.

케인스는 왜 GDP를 만들었을까? 전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되는 그에게는 일종의 고육책이었을 터다. 1940년 프랑스의 마지노선이 독일군의 전격전에 뚫리면서 39만 명의 영국 원정군 전체가 포로가 될 위기에 처했다. 독일군이 주춤하는 사이 됭케르크에 포위돼 있던 30만 명 이상이 용케 탈출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약 700대의 전차와 4만 대가 넘는 차량, 그리고 2000문 이상의 포 등 모든 무기와 장비를 버리고 온 처지였다. 이어 영국은 영국 섬의 제공권을 두고 독일 공군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한마디로 영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였다.

그러한 배경하에서 GDP가 제안된 거였다. 당시 인구가 4000만 명에 불과한 영국이 인구 8000만 명의 독일을 상대로 어떻게 전쟁에서 버틸 수 있을지가 케인스의 고민거리였다. 이때 프랑스는 이미 전열에서 이탈했고, 소련과 미국은 아직 참전 전이었다. 즉, GDP는 얼마나 많은 전차, 전투기, 군함을 생산할 수 있을까를 파악하기 위해 만든 지표였다. 2차대전은 1945년에 끝났지만 GDP의 계산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과연 양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국제통화기금이 2023년 10월에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2023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2%였다. 이것만 놓고 보면 전쟁 중임에도 경제가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크라이나의 2022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29%였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경제 활동의 3할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렇게 줄어든 데서 겨우 2% 늘어난 건 도긴개긴이다. 러시아는 어땠을까? 2023년에는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수준인 2.2%만큼 늘었지만 2022년에는 마이너스 2%로 경제가 쪼그라들었다. 즉, GDP 관점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렇게 수지맞는 행위는 아니었다.

사실 진정한 ‘전쟁의 철칙’은 따로 있다. 자국 영토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경제를 비롯해 거의 모든 게 망가진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경제성장률을 비교하면 자명한 사실이다. 러시아의 경제가 좋지 않아 전쟁이 조만간 끝날 가능성이 있을까? 3월 17일까지 치러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88%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다시 뽑힌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달리 말해 극적인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가까운 장래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 몸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제의 전쟁과 경제는 곧잘 서로의 발을 밟는 초짜 커플의 어설픈 탱고와 같다.


※권오상 대표는 카이스트와 UC버클리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금융감독원 국장 등을 거친 군사경제학 전문가다. ‘전쟁의 경제학’, ‘워코노미’ 등 전쟁과 경제의 관계를 연구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