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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문병기]‘트럼프 청구서’ 나오기 전 방위비 협상 마쳐야

입력 | 2024-03-31 23:42:00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한미 방위비 협상이 곧 시작된다고 한다. 이번 협상에서 논의될 방위비 분담금은 2026년부터 적용된다. 유효 기간이 1년 9개월가량 남은 기존 협정을 두고 벌써 협상을 시작하는 것은 올 11월 열릴 미국 대선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조기 협상 제안은 미국이 먼저 꺼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방위비 문제가 한미동맹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도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측 “주한미군 변화 불가피”


일각에선 이른 방위비 협상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각각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직무대행의 최근 동아일보 인터뷰를 되짚어 보면 트럼프 2기 출범 시 방위비 협상은 1기 때보다 더욱 폭발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먼저 방위비 협상의 원칙부터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한미가 주한미군 방위비의 절반씩을 부담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과 밀러 전 대행은 주한미군 규모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공통된 인식을 드러냈다. 밀러 전 대행은 더 나아가 “한국이 여전히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필요로 하는지 솔직하게 얘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100%를 부담해야 한다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이 실제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하기 어려운 셈이다.

방위비 협상이 주한미군 역할과 구성 재조정 논의를 본격화할 수도 있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과 밀러 전 대행은 모두 최대 위협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들의 안보 부담 분담을 강조했다. 미국에선 이미 주한미군과 한미연합군이 중국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미연합사 작전계획을 보완해야 한다고 요구한 지 오래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중요한 것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미군 전력과 인도태평양 동맹의 전력을 조화시켜 중국을 억제하느냐는 것”이라며 “미군 병력과 항공기, 함정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가 없을 수 있고, 이러한 전력은 중국을 더 억지하는 방식으로 분산될 수 있다”고 했다.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이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부쩍 강조하고 있는 방위산업 협력은 한미가 방위비를 포함한 ‘방위 분담(burden-sharing)’에서 윈윈할 수 있는 분야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한미 조선(造船) 협력을 제안하며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다”고 했다. 밀러 전 대행도 “미국과 동맹국 재무장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새로운 청구서가 날아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밀러 전 대행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국빈 방한 당시 방문한 ‘캠프 험프리스’의 건설 비용 대부분을 한국이 부담한 것을 언급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언급한 (방위 분담의) 모델이며 그런 대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美대선 전 안전장치 마련해야


일각에선 미국 대선 전 방위비 협상을 타결했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합의된 방위비를 기준으로 추가 증액을 시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벌써 협상 결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감지된다.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불확실성이 크다면 안전장치는 많을수록 좋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