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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칼럼]‘조국 현상’이 잉태한 혼돈의 씨앗

입력 | 2024-03-31 23:51:00

‘개인 복수극’ 차원으로만 볼 수 없는 세력화
尹정권 오만-불통이 曺의 부상 자양분 된 셈
‘탄핵 전위대’ 뜨면 尹 남은 3년 혼란 불 보듯
사법 입법 행정 다 뒤집기?… 헛된 걱정이길



정용관 논설실장


‘조국 현상’이 반짝하다 끝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견고할 줄은 몰랐다. 여론조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10명 중 2명은 4·10총선 비례 투표에서 조국혁신당을 찍겠다고 한다. 호남에선 민주당의 위성정당 지지율을 앞질렀다고 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20%에 근접한 지지 의향을 보이는 곳이 많다. 실제 투표로 이어질지는 결과를 봐야겠지만 심상치 않은 여론 흐름이다.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판결이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는 범죄자를 왜 지지하는지 알 수 없다며 한탄하는 사람들도 있고, 법정 구속을 하지 않은 판사의 비겁함을 탓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멸문지화 운운하며 연민의식을 가진 이들도 있고, 어느 정도 죗값을 치른 만큼 방탄 프레임에 갇힌 이재명보다 더 선명한 정권 심판에 나설 수 있다는 야권 지지층도 있다. 어느 쪽이든 조국 현상의 토양은 윤석열 정권이 만들어줬다는 진단엔 별 이의가 없을 듯하다.

흥행적 요소도 있다. 학창 시절 읽었던 무협지나 요즘 유행하는 웹툰 등에서 볼 수 있는 복수와 반전의 권력 게임 요소가 충분하다. 잘생긴 외모와 언변으로 한때 문재인 정권의 황태자, 진보의 우상으로 떠올랐지만 자녀 입시 비리, 위선과 내로남불로 추락했다가 이젠 자신을 파멸시킨 시퍼런 권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하니 정당성은 차치하고 그 혈투 자체가 흥미진진한 것이다.

이재명에 실망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등 ‘비조지민’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겠지만 그걸 정치공학적으로 세세히 분석하는 건 이 칼럼의 주제가 아니다. 그보단 단지 흥밋거리로만 볼 수 없는 어떤 불안감의 엄습을 말하고자 함이다. 이는 어느 개인이 ‘비법률적 명예회복’을 이뤄낼지 여부, 그를 앞세운 일부 인사들이 비례 배지를 몇 개 달지 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공공연히 합법적으로 선출된 최고 권력을 중단시키겠다는 세력, 그들이 원내에 진입하고 탄핵을 외치는 상황, 그에 따른 국정 시스템의 비정상적 작동… . 한마디로 더 큰 국가 혼돈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것 아닌지 하는 우려다.

조국도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3년은 너무 길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으로 만들겠다” 등 윤석열 정권의 조기 종식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법률적으로 가능하다면 탄핵이 궁극의 목표라는 전투의지다. 개인적으론 자기 인생을 되살리려는 복수극이지만, 본질적으론 선거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선출 권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다. 진정 소수 강경파인 볼셰비키가 온건파인 멘셰비키를 누르고 권력을 쟁취한 것처럼 가장 선명한 노선의 ‘탄핵 전위대’로 나서려는 건가.

조국 지지자들에게 곧 감방 갈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조국이 금배지를 단 것 자체로 개인적 명예회복에 감사하며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지려 할까. 이재명을 위협할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최종 판결을 앞두고 대법원을 압박하는 이른바 ‘조국 수호’ 집회가 연일 서초동 일대를 장악하는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소득이 월 10만 원 줄면 먹을 것부터 줄여야 하는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동네 슈퍼에 가면 달걀 30알 한 판을 평소보다 1000원 싼 4900원에 사려고 문 열기 전부터 길게 줄 선 서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고물가에 지친 민심을 어루만지는 모습보다는 권력의 오만과 불통이 더 부각됐다는 게 총선을 앞둔 여권 위기의 본질이다. 고발된 피의자를 호주대사로 임명하는 건 잘못이고 징역형을 받거나 재판 중인 피고인은 국회의원이 돼도 괜찮은 것이냐는 항변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왜 자신들과 그 가족에 대해선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느냐, 왜 국가 권력을 멋대로 쓰느냐는 주장이 더 먹히는 형국이다. 조국은 어쩌면 그런 분노를 자양분 삼아 제2의 촛불혁명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법부 영역과 입법부 영역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법률적 유죄를 정치적 면죄부로 덮으려는 시도 자체가 국가 질서를 뒤흔드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사법 체계가 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선출 권력의 정당성도 훼손되기 때문이다. 정권의 오만한 권력 행사가 조국의 비윤리적 행태를 희석시켰고 그 틈을 타 조국은 교만의 정치에 나섰다. 오만과 교만의 대결, 권력 쟁투 속에 사법부 권위도, 입법부의 견제 기능도, 행정부의 집행 기능도 제 길을 잃을 수 있다. 누구의 책임인가. 그 조국은 이렇게 살아날지 모르지만 내 ‘조국’은 어찌 될까. 이 모든 게 헛된 걱정이길 바랄 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