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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내고 치는 골프가 최고”…명 교습가 고덕호의 인생 마지막 꿈은[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4-04-01 12:00:00



한국 명 골프 교습가 중의 한 명인 고덕호 프로. 꾸준한 운동으로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 교습가 중 한 명인 고덕호 프로(62)는 라운드 기회가 많다. SBS골프 해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중계를 맡은 대회에 앞서 코스 답사 차 라운드를 한다. 개인 레슨을 하는 프로들과도 필드에 나간다. 그에게 한 수 배우고자 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필드 레슨도 가끔 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건 ‘내돈내산(내 돈주고 내가 산다)’ 라운드다.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한 달에 두세 차례는 ‘멤버들’과 함께 골프를 친다. 동반자들은 은퇴한 프로들이나 아마추어 챔피언들이다. 고 프로는 “나보다 뛰어난 분들과 함께 골프를 치면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다. 워낙 실력이 쟁쟁한 분들이다 보니 라운드 내내 긴장감이 감돈다”며 “누가 돈을 내주는 건 없다. 말 그대로 ‘n분의 1’이다. 가끔 밥 사기 내기를 한다. 그렇게 골프를 치는 게 가장 편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방한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고덕호 프로. 고덕호 프로 제공


수많은 주말 골퍼들의 길라잡이인 그의 골프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고 프로는 “예전 같지 않다. 젊을 때는 드라이버를 270~280야드씩 보냈다. 그런데 요즘은 잘 맞아야 250야드 정도 나간다”며 “비거리가 줄었으니 죽지 말고 똑바로 보내자는 마음으로 친다”며 웃었다.

그의 마지막 자존심은 선수들이 치는 ‘백티’를 사용하는 것이다. 주말 골퍼들이 주로 쓰는 화이트 티에서 치면 훨씬 스코어를 줄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백티를 고수하고 있다. 생애 베스트 스코어가 6언더파인 그는 지금도 백티 기준으로 70대 중반 스코어를 유지하고 있다.

여러 차례 골프다이제스트가 선정한 세계 50대 교습가에 포함됐던 그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프로 선수들만 가르쳤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1인자로 군림했던 서희경,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도 우승했던 배상문,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고진영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요즘에는 일반인 대상으로 범위를 넓혔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을 딴 ‘고덕호PGA아카데미’를 운영해왔는데 올 1월에 경기 수원 스타필드에 2호점을 냈다. 앞으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를 점점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얼마 전까지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였던 고진영은 고덕호 프로의 제자 중 한 명이다. 고 프로는 “진영이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고 말했다. 고덕호 프로 제공


그가 운영하는 아카데미 이름에 PGA가 들어가는 이유는 단지 그가 PGA(미국프로골프) 클래스A 자격증을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틈날 때마다 강조해온 골프의 기본 3요소인 ‘파스처(posture)’ ‘그립(grip)’ ‘얼라인먼트(alignment)’를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의 레슨이나 강연에는 바로 이 ‘PGA 이론’이 빠지지 않는다.

고 프로는 “이 세 가지는 골프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본기를 잘 익힌 후 힘을 빼고 어깨와 골반 등 큰 근육을 이용해 편하게 스윙을 하는 게 핵심”이라며 “큰 근육을 쓰지 않고 팔로만 세게 치려 하면 어김없이 부상이 온다. 골프는 건강하게 오랫동안 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요즘 골프 교습은 유튜브를 비롯해 어디에서나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스윙 스피드, 공 회전수 등 데이터도 쉽게 얻을 수 있다”며 “하지만 골프 스윙은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몸이 느껴야 하는 것이다. 숫자 등에 너무 집착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몸이 경직되기 쉽다. 가능한 한 머리를 비우고 심플하게 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고덕호 프로가 샷을 하고 있다. 지금도 백티에서 70대 중반 타수를 친다. 고덕호 프로 제공


처음부터 골프가 그의 천직이었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때 그는 잠시 축구 선수를 했다. 축구부가 해체된 뒤엔 야구부에 들어가 중학교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딱히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건 군대 제대 후 미국 유학을 가서였다. 사우스플로리다 주립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운동부에 들어가면 장학금을 준다는 말에 골프를 시작했다. 마침 룸메이트가 파나마 골프 국가대표 출신이었다. 야구, 축구 등으로 단련된 몸으로 골프에 집중했더니 금방 70대 초반 타수를 쳤다.

내친김에 문라이트 투어 등 미국 플로리다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출전해 여러 차례 우승도 했다. 하지만 PGA투어를 향해 꿈을 키워 가려 할 무렵 예기치 않게 오른쪽 팔꿈치 부상이 찾아왔다. 팔이 너무 아파 프로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그는 생계를 위해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중엔 아예 옷 가게도 하나 차렸다.

그의 인생은 2000년 초반 PGA투어에 진출한 ‘탱크’ 최경주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당시 Q스쿨을 준비하던 최경주를 돕다가 “한국에 골프 유망주가 많으니 한국에 가서 한 번 가르쳐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들었다. 단, 필요한 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자격증이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도전을 택했다. 운영하던 옷 가게를 접고 PGA 클래스 A 자격증에 ‘올인’한 것이다. PGA 클래스 A를 따려면 15개 과목을 듣고, 골프장 운영과 잔디 관리, 고객 응대 등을 모두 배워야 한다. 대개 5년 안팎이 걸리지만 그는 3년에 이 모든 과정을 끝냈다. 그는 “빨리 업무를 익히기 위해 한 골프장에 취직을 했다. 프로샵에서 인스트럭터로 일하면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했기에 혼자 일할 수 있는 드라이빙 레인지(연습장) 근무에 자원했다”며 “연습장에서 먹고 자며 공을 줍고 씻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고 했다.


고덕호 프로는 가벼운 맨몸 운동 위주로 지금도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중년의 골퍼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유연성”이라고 말한다. 고덕호 프로 제공


2000년대 중반 한국에 온 뒤 그는 단번의 명(名)교습가 반열에 올랐다. 그는 “내가 인복이 있다. 좋은 선수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처음 지도할 당시 KLPGA 2부 투어에서 뛰던 서희경은 2008, 2009년 2년 사이에 11승을 거뒀다. 배상문은 PGA투어에 진출하며 그가 선수로서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뤄줬다. 고 프로는 “개인적으로 1995년 한국에서 열린 매경오픈에 미주 아마추어 대표로 참가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력 발휘도 못해보고 컷 탈락했다”며 “그런데 나중에 한국에 와서 가르친 박준원이 2014년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말했다.

어느덧 60대가 됐지만 그에게선 별로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체형도, 얼굴도, 목소리도 예전 그대로다. 하지만 그는 “중년 이후의 골퍼들에게는 유연성이 가장 중요하다.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평소에 몸을 꾸준히 움직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15분 가량 스트레칭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파트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에 갈 때도 있지만 대개는 집에서 푸쉬업이나 윗몸 일으키기, 스쾃 등 맨손 운동을 많이 한다. 집에 있는 덤벨이나 로프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체 운동은 계단 오르기를 애용한다. 그가 출퇴근하는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15층에 있는 스포츠센터까지 가능하면 걸어서 올라간다. 자전거도 종종 탄다. 시간이 될 때마다 경기 분당 탄천에서 1시간 가량 페달을 밟는다. 그는 “지금 나이에서는 다칠 우려가 있는 자극적인 운동보다 잔근육을 키우는 적당한 운동이 좋다”며 “젊을 때처럼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도 인바디 테스트를 하면 상위권 점수가 나온다”고 했다.


고덕호 프로가 그리는 인생 마지막 꿈은 멋진 코스를 찾아 마음껏 골프를 즐기는 것이다. 고덕호 프로 제공


쉴 새 없이 바쁜 인생을 살아온 그는 70살 이후에는 좀더 여유를 갖고 즐기는 인생을 살아볼 생각이다. 가장 하고 싶은 건 세계 100대 골프 코스를 다녀보는 것이다. PGA 클래스 A 자격증을 갖고 있는 그는 일반인에 비해 그런 코스를 쉽게 다닐 수 있다. 같은 자격증을 갖고 있는 프로들이 골프장 지배인을 맡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는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국내외 좋은 골프장을 많이 다녀 봤다. 하지만 대부분 일을 하러 간 것이지 놀러 간 적은 없다. 은퇴 후에는 멋진 코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골프를 마음껏 즐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