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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가 고슴도치의 가시에서 배운 것[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입력 | 2024-04-01 23:30:00

강용수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필자가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내기 전에 이미 상당한 마니아층을 갖고 있었던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유튜브를 통해 염세주의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인간관계를 끊고 혼자 살라는 조언은 200년 전 ‘꼰대’ 철학자의 ‘팩폭’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대학교 강의에서도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비주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가 아닌 현실주의자였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부족함이 없이 자란 덕분에 쇼펜하우어는 여행을 통해서 세상의 비극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만약 그가 궁핍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독자적인 사유를 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사교적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에 대해 잘 알았으며 가난한 사람의 배고픔보다는 부자들의 권태, 지겨움, 공허함을 간파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행복이 쾌락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것, 고통을 견디는 데 있다고 본다. 200년 전의 독일의 소극적 행복론이 오늘날 한국에서 부활한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삶에 대한 맹목적인 의지에 의해 이끌린다면 인간은 욕망의 최대결핍과 최대과잉에 고통받는다. 거식이 고통이라면 폭식 또한 힘들다. 가난한 사람이 궁핍 때문에 힘들다면 부자는 풍족함에도 불만이 있다. 고통에는 목마름이나 배고픔 같은 생물학적인 욕망에 근거하는 것도 있지만 인간관계에 따른 것도 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다루는 고통은 생물학적 결핍이 아니라 사회적인 과잉에 따른 것이 더 많다. 오늘날 한국에서 쇼펜하우어 철학에 열광하는 이유는 배고픔과 같은 생존 욕구보다는 인간과의 만남에서 생겨나는 소유욕, 시기심, 질투, 자존감 등과 관련이 더 크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를 예로 들어 타인을 만날 때 ‘가시’로 찔러 상처를 주지 않도록 늘 ‘예의와 정중함’을 갖춰야 한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는 어느 정도 충족이 된 상태다. 이제 누구나 원하는 좋은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나오는 명예나 부와 같은 외적인 가치다. 그러나 누구나 이 두 가지를 가질 수 없으므로 실패와 좌절감에 따른 불행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 1등이 될 수 없고 모두 100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의 시선에서 좋게 평가받으려는 ‘허영심’이 생겨난다. 그러나 자신의 본래 모습보다 더 남에게 잘 보이려는 거짓된 욕망은 인정받기 어렵다. 돈(재물)도 행복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부는 근심을 가져온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욕망에서 모자람과 지나침을 경계한다. 생물학적 욕망이든 사회적인 욕망이든 결핍이 적당히 충족되는 상태가 바로 행복의 순간이다. 쇼펜하우어의 삶이 보여주듯이 명예와 부는 포기하지 않고 삶을 꾸준히 완주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명예와 부는 삶의 원래 목적이 아니라 결과였던 것이다. 72세에 쇼펜하우어가 눈을 감을 때 웃었던 이유는 명예와 부를 모두 가졌기 때문이다. 장수를 통해 삶의 고통을 견뎌내면서 진정한 행복을 성취한 쇼펜하우어의 지혜로운 삶에 우리가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