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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로 공포를 이긴다[임용한의 전쟁사]〈309〉

입력 | 2024-04-01 23:30:00


모스크바 테러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져 갈 것 같다. 러시아는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기회에 연일 최대한 엄포를 놓고 있다. 우리는 분노했고,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선포함으로써 서방세계가 지원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에 휴전이나 항복을 설득하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1950∼60년대 냉전의 대립이 극에 달했을 때, 흐루쇼프는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서방세계의 약점은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이익이 걸리거나 시민들 사이에 불안, 공포, 경제적 손실에 대한 아까움이 번져 간다면 서방 정부는 양보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이 사건들을 기억하는 세대도 적겠지만, 베를린 장벽 설치, 헝가리, 폴란드 민주 시위에 대한 진압, 쿠바 미사일 위기 등 소련이 서방세계와 충돌했던 사건에서 그들이 배짱 좋게 나갔던 데는 서방세계에 대한 이런 전략적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성공을 거두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 전략은 꽤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은 예상보다 빨리 공황에 빠졌고, 유럽은 예상보다 강경하게 버티고 있다. 몇 개 국가가 전열에서 이탈해서 만장일치제인 나토에 기능 장애를 선물하긴 했지만 말이다. 러시아는 작년 우크라이나의 반격 작전을 좌절시키고, 공세로 돌아섰지만, 기대한 만큼 전진하지도 못하고 있다.

최근에 푸틴은 과격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공포 작전의 총구를 유럽으로 돌렸다. 하지만 거듭되는 과격 발언은 러시아도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는 데 체력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징후일 수 있다. 이 낌새를 눈치챈 미국의 대선 후보들은 여론의 눈치는 눈치대로 보면서 어떤 형태로 끝나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자신의 공으로 가져오거나 최소한 타인의 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죽을 지경으로 만들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 비정하고, 정치인들은 더 비정하고, 독재자는 비정의 끝을 알 수 없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