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의 한 장면.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선택 사이에서 겪는 고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는 평을 한 주체는 챗GPT일까, 평론가일까? 쇼박스 제공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얼마 전 챗GPT의 놀라운 힘에 관해 트렌드 전문 강사의 강의를 들었어요. 강사는 챗GPT의 기원과 변천사에서 시작해 챗GPT가 인간을 대체할 영역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줬어요. 그는 “여기 여러분의 일자리는 대부분 챗GPT에 의해 사라질 것”이라면서 “앞으로 인간은 데이터 정리가 아니라 창의, 혁신, 리더십, 질문 능력, 사회적 영향력, 감성지능, 방향 설정, 사고의 유연성에서 자기 몫을 찾아야 한다”고 뽐내는 투로 말했어요. 저는 생각했어요. 챗GPT가 제일 먼저 없애 버릴 대상은 바로 저 강사가 아닐까. “챗GPT의 역사와 챗GPT가 인간의 직업에 미칠 영향을 정리해줘”라고 챗GPT에다 요구하면 죄다 나올 법한 강의 내용이었으니까요.
저는 궁금했어요. 챗GPT가 영화평론도 대체할까? 자, 다음 두 영화평 중 챗GPT의 것과 제가 예술적 영혼을 흑염소 육골즙처럼 짜내어 쓴 글을 골라보세요.
① ‘헤어질 결심’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복잡한 감정과 결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주인공들의 심리적 고뇌와 갈등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이들의 선택이 어려움과 상처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임을 전합니다. 이는 우리가 가진 복합적인 감정과 욕구가 어떻게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합니다.
어느 것이 챗GPT의 것일까요? 죄송해요. 여기서 선택지 하나 더 드릴게요.
③ ‘파묘’는 인간의 깊은 심리와 윤리적 고뇌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과 갈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이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선택 사이에서 겪는 고뇌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가진 삶의 한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며,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합니다.
자, 셋 중 챗GPT의 것을 모두 골라 보세요. ‘모두’ 고르라니! 벚꽃 피어나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세기말적 짜증이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하죠? 정답은 바로….
셋 모두 챗GPT의 것! 챗GPT의 능력이 진짜 대단하죠?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을 두고 챗GPT가 어찌하여 ②처럼 싸구려 비난을 가할 수 있을까요? 챗GPT에다 “‘헤어질 결심’에 대해 싸구려처럼 평론해줘”라고 제가 요구했으니까요. 게다가 무슨 쇼펜하우어의 글처럼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심오한 내용의 ③은 제가 “‘파묘’에 대해 인문학적이고 심도 있는 비평을 해줘”라고 명령한 결과물이랍니다.
마지막으로 미치게 궁금했어요. 챗GPT에겐 가치 판단 능력이 있을까? 그래서 최근 본 영화 중 최악이었던 ‘가문의 영광: 리턴즈’를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비평해 달라고 하면 챗GPT는 어떤 답을 할까?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분석할 건더기조차 없다”라고 결연히 답해주지 않을까, 저는 기대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챗GPT는 이런 살뜰한 비평을 선물해줬어요.
“영화는 가문과 구성원들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통해 인간 본성과 삶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탐구합니다. 가문이라는 개념은 인간사회의 근본적 요소 중 하나로, 영화는 가문의 역사와 가치가 인간의 정체성과 연관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에라이! 챗GPT에겐 죄가 없어요. 양아치 같은 저의 장난질이 문제일 뿐. 아, 100년 뒤에도 살아남을 인간 직업 딱 두 가지를 꼽으라면, 사기꾼(이것도 소득세와 건보료를 내는 정식 직업인진 모르겠으나)과 정치인일 거란 확신이 들어요. 북두칠성처럼 빛나는 인간의 흑심은 죽어도 챗GPT가 넘어서지 못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