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넘는 콘텐츠]〈4〉넷플릭스 1위 오른 드라마 ‘삼체’ 900만부 팔린 류츠신의 장편 원작 ‘지식인 핍박’으로 강렬한 오프닝… 외계인에 메시지 전송 정당화 中선 “중국을 나쁘게 그렸다” 반발… 제작진은 “원작자 허락하에 각색”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에서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 예저타이(페리 영)가 홍위병들에게 끌려나오는 장면. 드라마는 문혁 때 중국 지식인들이 탄압받은 모습을 생생히 그린다. 넷플릭스 제공
광기에 사로잡힌 믿음의 끔찍함.
지난달 21일 공개된 뒤 넷플릭스 세계 1위(TV 부문·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른 드라마 ‘삼체’는 첫 장면부터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의 비극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제자와 아내에게 버림받고 끝내 살해당하는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 예저타이(페리 영)의 죽음을 통해 홍위병이 지식인을 핍박한 역사를 직시한 것이다.
특히 이 장면은 이후 예저타이의 딸 예원제(진 쳉·로절린드 차오)가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반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인간 대신 외계인에게 지구를 맡겨야 한다는 ‘인간 회의론자’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문혁 당시 각계 지식인들이 무참히 죽은 역사를 통해 반지성적 행동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고 볼 수 있다.
원작에서도 문혁에 대한 묘사는 짧지만 참혹하기 그지없다. 예저타이가 죽은 뒤 단상의 모습을 원작은 “핏줄기만이 유일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붉은 뱀처럼 천천히 구불구불 기어가다 단상 끝에서 한 방울씩 아래에 있는 빈 상자 위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예저타이의 부인이 귀가해 실성한 듯 웃는 구절은 부부의 연마저 끊어버린 문혁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드라마 ‘삼체’ 공개 후 중국에선 “드라마가 중국을 나쁘게 그렸다”,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정치적 각색”이라며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자체 제작한 30부작 드라마 ‘삼체’가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반발은 중국의 젊은 ‘애국주의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삼체’ 제작진은 원작자의 허락하에 각색을 했다는 입장이다. 미국판 원작소설에선 홍위병 장면을 맨 앞 장에 넣었다. 넷플릭스가 중국계 캐나다 감독 쩡궈샹(曾國祥)을 섭외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10년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중국 영화계에서 주로 활동했다.
일각에선 예원제가 겪는 시련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삶과 연관 지어 보는 시선도 있다. 시 주석은 문혁 당시 아버지 시중쉰 부총리가 숙청되면서 함께 하방된 적이 있다. 오지에서 7년간 토굴 생활을 하다 공산당에 입당했다. 아버지 예저타이가 숙청당한 뒤 고생하다 외계인과의 소통을 주도하는 연구원이 된 예원제의 삶과 겹쳐 보인다.
‘삼체’에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총괄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전 세계 다양한 지역 출신의 배우들을 원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가 원작보다 인간적인 이야기를 강조한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드라마는 다섯 명의 영국 옥스퍼드대 동문을 중심으로 우정의 서사를 풀어낸다. 원작에서 중국 과학자인 왕먀오가 홀로 맡았던 탐정 역할을 드라마는 다섯 명이 함께 맡는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드라마 시즌2의 세계관과 배경이 우주로 확장된 원작소설의 흐름을 따라갈지, 옥스퍼드 동문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사를 창조할지 기대된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