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위기 속 지분 늘리는 중국
● 이집트 안 ‘작은 중국’ 공업단지
이집트 아인수크나항 인근에 조성된 ‘테다(TEDA)중국산업구역’ 안에 홍해, 수에즈운하를 거쳐 온 각국의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단지 내 시설을 관리하는 한 이집트 관계자는 “전쟁 이전보다 들어오는 양은 줄었지만 대부분의 업체가 신규 공사에 큰 차질은 없다”고 답했다. 홍해발(發) 물류 대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중국 정부는 일대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아인수크나=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특히 이들은 이곳 일대를 철강·유리·파이프 등 제조업 기지에서 친환경 산업단지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27억5000만 달러(약 3조7180억 원)를 중국 정부가 투자하기로 했다. 이집트 정부는 외화 유치를 위해 사실상 황무지인 이곳을 외국에 저렴한 조건에 임대할 방침이라, 테다중국산업구역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도 140개 이상의 중국 기업 및 중국-이집트 협력 업체가 입주해 있다.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하지만 중국 선박들은 후티 반군의 타깃에서 벗어난 덕분에 홍해 일대에 경제적 영향력을 조용히 확장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중국이 후티 반군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자국 선박 보호에만 집중한다고 비난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산업구역을 둘러보니 중국의 영향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단지 중심부 8층짜리 ‘수에즈경제무역협력지대’ 청사 건물은 중국어가 아랍어보다 더 큰 글씨로 적혀 있을 정도였다. 청사 앞엔 이집트 국기와 오성홍기가 함께 펄럭였으며, 주변의 각종 안내판도 이집트 표기 아래 중국어를 병기해 뒀다. 아예 중국어만 내건 마켓이나 식당도 많아 마치 중국을 방문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공사 현장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이집트인이었지만, 청사 인근에선 중국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카이로에서 출퇴근한다는 한 중국인은 “여기서 일한 지 3년이 넘었다”며 “우리 정부가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파견 중국인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택 단지 인근의 놀이공원 ‘테다 펀밸리’에도 중국인 가족이 가득했다. 한 카페에서 일하는 유스프 압델 씨(29)는 “중국 회사 일자리가 늘어날 기대에 이집트 청년들도 이곳을 많이 찾고 있다”고 했다.
● 사우디, 지부티까지 홍해 영향력 확대
홍해와 맞닿은 제다 항구를 끼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중국과 경제 협력을 늘려 가는 대표적 국가다. 원유 수출로 자금력을 갖춘 사우디는 석유 수출 일변도의 경제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중국과 물류, 제조업, 첨단 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국영 물류사인 코스코(COSCO)의 자회사인 코스코쉬핑포트(CSPL)는 제다 홍해게이트웨이터미널(RSGT) 항만의 지분 20%를 인수해 공동 운영 및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홍해와 맞닿은 항구도시 킹 압둘라 경제도시(KAEC)도 중국 기업의 영향력이 커진 지역이다. 제다에서 북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이곳은 사우디가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집중 개발하는 지역이다.
해운 전문 매체 로드스타에 따르면 중국 해운업체 ‘차이나 유나이티드 라인(CULines)’은 지난달부터 중국 닝보(寧波)항에서 사우디 제다항까지 ‘홍해 익스프레스(Red Sea Express)’ 서비스를 개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후티 반군은 이란 정부로부터 중국 연계 선박은 공격을 자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오성홍기를 단 홍해 익스프레스 선박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운항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해와 인접한 동아프리카 국가 지부티도 중국의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중국의 유일한 해외 군사기지가 있어 홍해 일대 군사 확장의 통로가 되고 있다. 올 1월에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의 자오러지(趙樂際) 상무위원장은 지부티 국회의장과 만나 군사 및 경제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 홍해 다음은 지중해도 노린다
중국은 올해 들어 이집트에 지중해 개발에 대해서도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왕원타오(王文濤) 중국 상무부장은 2월 이집트의 무스타파 마드불리 총리 등과 만난 자리에서 “향후 유럽 시장 공략 등을 목표로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에도 새로운 산업 단지를 구상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지중해 연안은 홍해와는 또 다른 산업기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해 일대가 제조업 분야 중심이었다면, 지중해는 정보통신과 전자상거래 등 첨단 분야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현지 매체들은 “최근 10년 동안 양국 경제 협력이 나날이 증가해 중국의 구상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집트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 자본 유치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중국은 주로 차관 형태로 투자금을 제공해, 이전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과실은 중국이 독차지하고 상대국은 이자를 갚느라 허덕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극심한 경제난을 겪는 이집트 정부로선 중국의 막대한 자금은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중국의 지중해 구상은 2월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 도시인 ‘라스 알히크마’에 대규모 첨단 산업단지 및 고급 주거단지를 짓는 대가로 약 350억 달러를 투자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UAE 역시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일대에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이집트에 투자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에 중국도 지중해 진출에 더욱 속도를 내고자 하는 모양새다. 때문에 이집트 국민들 사이에선 “UAE와 중국에 돈을 받고 영토를 팔아 넘긴다”는 자조적인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반세기 동안 홍해와 중동에선 미국이 지배적인 안보 행위자였지만, 이제 중국이 포괄적 경제 파트너십과 공존을 대가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중국은 서방 국가들처럼 ‘민주화’를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 데다 경제 발전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들과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아인수크나에서
김기윤 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