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치는 5·18 농담 다른 세상의 유머 취향 보여준 이재명 중국에는 셰셰 하며 왕서방 흉내 안 웃기는 유머 뒤의 걱정스러운 현실 인식
송평인 논설위원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회칼 테러 보복’ 운운했다는 MBC의 앞뒤 다 자른 보도는 전해들은 발언의 맥락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그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황 전 수석을 흉내낸다면서 한 5·18 농담이다.
이 대표는 전북 군산 유세에서 “너 칼침 놓는 것 봤지. 너네 옛날에 회칼로”라며 쑥쑥 찌르는 동작을 반복한 뒤 “농담이야”라고 말했다. 또 “광주에서 온 사람들 잘 들어. 너네 옛날에 대검으로, M16 총 쏘고 죽이는 것 봤지. 너 몽둥이로 뒤통수 때려서 대가리 깨진 것 봤지. 조심해”라며 내리찍는 동작을 한 뒤 이번에도 “농담이야”라고 덧붙였다.
군 복무할 때 경북에서도 외진 지방 출신의 소대원이 한 명 있었다. 노래를 시켜보면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를 했다. 뽕짝도 아니었다. 부른다기보다는 웅얼거렸다. 알고 보니 공사판에서 배운 ‘노가다’ 노래였다. 그런 것 말고 뽕짝이라도 하나 불러보라고 해도 부를 줄 아는 뽕짝이 없었다. 그가 보통 소대원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노래를 부르듯이 이 대표는 보통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의 유머 취향을 보여준 것이다.
고대 로마에 잔인한 성정으로는 네로조차도 따라갈 수 없는 칼리굴라라는 황제가 있었다. 성적으로도 문란했던 그는 잠자리에서 애인의 목에 키스하면서 “이 아름다운 목도 내가 원하면 잘리고 말걸”이라고 속삭였다고 한다. 그의 잔인한 성정을 과장하기 위해 꾸며낸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농담이라도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이 있다고 여겼기에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슬픔을 자아내는 얘기는 세상 어디서나 비슷하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공감한다. 반면 웃음은 국지적이다. 그래서 외국인의 유머는 즉각 알아듣고 반응하기 힘들다. 유머는 정신세계를 공유하는 집단에서만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 대표의 ‘칼로 찌르고 몽둥이로 치는’ 5·18 농담은 철없는 소년들의 정신세계에서는 재미있는 것일 수 있다. ‘2찍’ 같은 말도 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중독성이 있다. 그러나 다 커서도 그러는 것은 도덕성 진화가 덜된 ‘가여운(poor)’ 정신세계를 보여줄 뿐이다. 너무 앞서가서 알아듣기 힘든 농담을 4차원적이라고 한다면 조폭들이나 재미있다고 낄낄거릴 농담은 2차원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대표는 충남 당진 유세에서는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는 뜻의 중국말),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며 두 손을 마주 잡고 고마움에 겨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대표가 중국 왕서방처럼 두 손을 잡고 이쪽에도 저쪽에도 헤헤거리는 모습이 조국 씨가 묘사한 적이 있는 ‘앞발을 싹싹 비비는 파리’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어 웃기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점 때문에 웃는 건 그의 의도와는 반대된다.
그는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의) 국내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와 뭔 상관이 있어요. 그냥 우리는 우리 잘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전쟁이 일어나면 중국이 주한미군의 대만 이동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으로 미사일을 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협박까지 하는 마당에 우리와 뭔 상관 있냐고 말하는 것은 ‘셰셰’ 하며 왕서방 흉내 낸다고 재밌어지는 게 아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