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털옷 입은 남자를 손으로 제압하고 있다. 여인은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금색 방망이로 남자를 내려치려 하고 있다. 건장해 보이는 남자는 손에 칼까지 들었는데도 넘어져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고 무슨 상황인 걸까?
이 그림은 18세기 프랑스 화가 장마르크 나티에가 그린 ‘불의를 응징하는 정의의 우화’(1737년·사진)다. 그러니까 현실의 상황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테미스가 불의에 맞서 싸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에서 테미스는 두 눈을 가리고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게 일반적이다. 눈가리개는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과 통찰력을 의미하고, 저울은 공정한 판단을, 칼은 거짓과 불의를 단호하게 잘라냄을 상징한다. 그러나 나티에가 그린 테미스는 눈가리개가 없이 불의를 또렷이 응시하며 상대하고 있다. 불의는 테미스에게서 저울과 칼을 뺏어 자신의 무기로 삼으려 한 듯하다. 화가 난 테미스는 손 모양이 달린 금방망이를 들고 불의를 응징하는 중이다. 그 손은 칼보다도 강해 보인다.
정의의 기준은 각자가 달랐을 수 있지만, 이 그림을 의뢰한 권력자도, 그림을 그린 화가도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18세기 그림에 담긴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건, 정의가 끝내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인류 보편적인 미덕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의를 응징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