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2024년 3월 31일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옆 간부들이 수첩을 들고 있는 모습은 그의 권력이 얼마나 큰지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2013년 7월 3일자 노동신문에 실렸던 사진이 대표적이다. 회의실이 아닌, 어떤 건물 복도에 김정은의 전용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다. 테이블 위에는 재떨이가 놓여있다.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군 간부 모자를 쓴 8명이 서 있는데 이들 모두 손에 수첩을 든 채 김정은을 응시하거나 수첩을 보고 있다.
10년도 더 지난 사진이지만 그 사진 이후에도 김정은 옆에 있는 간부들은 ‘말씀 기록용’ 수첩과 볼펜을 꼭 들고 있다. 나는 2003년부터 북한 사진을 지켜보고 있다. 물론 김정은 이전 김정일 시대에도 수첩을 들고 있는 간부들의 사진은 있었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느낌이다. 합법적으로 수첩을 들지 않아도 되는 측근은 딸과 부인 그리고 경호원 정도이다.
현지지도를 가거나 회의를 하면서 김정은이 하는 발언들은 북한 내부에서는 곧바로 역사가 되고 활동 지침이 된다. 김정일 시대에도 그랬고 김일성 시대에서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발간하는 수많은 ‘어록’에는 정말 세세한 지시까지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조선시대에도 왕의 말씀을 기록하는 사관(史官)들이 있었고 왕조실록 편찬의 기초자료로 활용됐다. 일반적인 다른 국가에서도 최고지도자의 말은 기록되고 보존된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메모의 형식이 획일적이다. 수첩의 크기는 대체로 15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인다. 군대에서 나눠준 군인수첩이 연상된다. 표지 색깔은 초록색도 있고 갈색도 있는데 주로 갈색이 많이 보인다. 각 페이지의 오른쪽 위에는 “년 월 일”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사진 2〉. . 2024년 3월 15일 김정은 총비서가 전날 강동종합온실 준공 및 조업식에 참석했다. 김위원장 오른쪽의 조용원 조직비서 등이 메모를 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의 국무위원장 최측근인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의 수첩도 보인다. 조용원의 수첩은 좀 더 간결하게 메모가 적혀 있었다. 조용원은 한 줄을 쓰고 한 줄을 띄우는 방식으로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게 기록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부족하다. 소위 풀 텍스트(full text)는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 말고 김정은 ‘말씀’을 토시까지 기록하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사진 앵글 밖에 기록 담당이 따로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사진을 좀 더 찾아보았다. 조용원(김정은 오른쪽 안경 낀 사람)의 수첩 밑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사진 3〉 왼쪽 사람의 수첩에는 비교적 자세한 문장이 쓰여 있다.
〈사진 4〉위쪽에 보이는 수첩이 조용원 비서의 수첩이다. 핸드폰이 보인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