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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과 선거[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입력 | 2024-04-04 23:27:00

이기진 교수 그림


경쟁 없는 세상은 없다. 중고등학생들은 눈앞의 입시 때문에 경쟁이 심하게 보일 뿐, 나이가 들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치밀해지고 끝도 없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 역시 경쟁의 세계에 놓여 있다. 강의 평가, 연구 평가는 물론이고 연구비를 받기 위해 혹독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의 누적된 연구와 앞으로 수행할 연구에 대한 평가가 진행된다. 연구비 심사는 상대평가다. 10명 중 2명에게만 주는 연구비 심사에서 3등이 되면 탈락이다. 2등과 3등의 차이는 크다. 온탕과 냉탕만큼.

삶은 연속 방정식과 같다. 연구비를 받았다 한들 계속 가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끝이 나고, 그러면 다시 경쟁을 치러야 한다. 더 피 말리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잘나가는 4번 타자라고 해도 몇 번을 실수해 타율이 떨어지면 그 야구선수는 밀려난다. 타순이 밀리면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세상 이치다. 이 기분이 오래되면 슬럼프가 찾아오고,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 두려워질 수 있다.

이런 치명적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무엇일까? 역전 홈런을 쳐서 상황을 극적으로 전환시키거나, 희망찬 결과가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추스르고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날을 기다리며.

안타깝게도 즐기는 시간은 가을 햇살처럼 짧고, 평가의 시간은 어김없이 도착한다. 나 또한 새로운 연구비를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요즘에 이런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또 있다. 22대 국회의원선거 출마자들이다. 유권자들의 1표에 냉엄한 운명을 경험해야 하는 사람들. 이 국회의원들이 선거 전까지 주목하는 것은 나침반 바늘처럼 항상 흔들리는 여론조사다.

여론조사는 무작위로 추출된 일정 수의 사람들에게 설문을 통해 수집한 응답 결과를 통계이론에 근거해 조사하는 기법이다. 당연히 표준오차가 있다. 조사하는 표본이 다양하고 크기가 커지면 오차는 작아진다.

여론조사와 통계물리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고전 통계의 기초는 1859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마련했다. 공기 중엔 셀 수 없이 많은 분자가 존재한다. 기체 1몰 속에 약 10의 23승개의 분자가 존재한다. 얼마나 많은 수인가? 이 수많은 분자 하나하나의 운동 상태를 파악할 수 없으니, 맥스웰은 통계적으로 평균을 내서 분자의 평균 에너지를 계산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통계를 이용한 계산 결과와 물리적 현상이 일치하므로, 투표하는 한 사람과 한 개의 움직이는 분자를 동일시해서 통계적 처리를 하면 오차범위 내에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이렇듯 여론조사는 고전 통계를 이용한다.

그러나 투표하기 전까지, 누구를 찍을까 고민하는 과정은 양자역학적 확률과 같은 상황이다. 아무것도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 즉 유권자의 심리는 결정되기 전까진 나침반 바늘처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양자적 상태라 할 수 있다.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니, 어느 누구도 어떤 최종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국회의원 출마자들은 최선을 다해야 하리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