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이 창립 13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4월 3일 자로 3개 회사로의 분사(GE에어로스페이스, GE버노바, GE헬스케어)가 완료됐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에서 ‘GE’라는 티커명은 GE에어로스페이스가 물려받긴 하는데요. 회사 이름이 ‘제너럴일렉트릭(GE)’인 그 대기업은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GE의 종말은 곧 이 사람 이야기에 종지부가 찍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은퇴한 지 20여 년, 사망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강렬한 이름. 잭 웰치 전 회장과 GE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봅니다.
GE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름, 전 회장 겸 CEO 잭 웰치.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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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넘치는 세기의 경영자
여러분은 잭 웰치 전 GE CEO 겸 회장을 어떤 인물로 기억하나요. 가장 널리 알려진 수식어는 이겁니다. ‘세기의 경영자’. 1999년 미국 포춘지가 그렇게 선정했죠.잭 웰치는 그 시대 최고의 스타 CEO였습니다. 그 인기는 지금의 일론 머스크보다 더했죠. 월스트리트는 그를 사랑했고, 경영인들은 그를 존경했습니다. ‘CEO 우상화’의 시작이라 할 만했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CEO 재임 기간(1981~2001년) 만들어낸 놀라운 경영성과(=숫자들) 때문이죠. 몇 가지 소개하자면.
GE 주가는 잭 웰치 재임 기간 약 3000% 상승했습니다. 기업가치가 140억 달러에서 4500억 달러까지 뛰었죠. 이는 같은 기간 S&P500 상승률(약 330%)의 9배에 해당합니다.
GE는 1993년 9월 미국기업 중 시가총액 1위에 올랐습니다. 그 뒤로도 꽤 오래 선두권이었죠.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에 1위 자리를 뺏긴 뒤 엎치락뒤치락했고, 2004년에 마지막으로 1위를 기록했습니다.
GE는 놀랍도록 안정적인 수익성장을 보여줬습니다.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경기가 나쁠 때도 좋을 때도, GE는 매 분기 실적발표에서 애널리스트 추정치를 충족하거나 웃돌았습니다.
1995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의 시가총액 1위 기업의 변화(1분기 시총 기준)를 보여주는 그래픽. GE는 1993년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올랐다. 이후 MS와 엎치락뒤치락했고, 2004년이 마지막으로 1위를 기록한 해다. Visual Capitalist
카리스마 넘치는 세기의 경영자
좀 더 옛날, 웰치 시대 이전의 GE를 기억해볼까요. 에디슨의 전구 회사를 전신으로 하는 GE는 전구와 가전으로 유명한 제조업체였습니다. 발전용 터빈과 항공 엔진 같은 산업재에서도 명성이 높았고요. 동시에 가족적이면서 관료주의적인 전형적인 미국 대기업이었죠. 1970년대를 이끈 레지날드 존스 CEO는 직원이 상을 당하면 직접 전화 걸어 위로하는 온화한 리더십이었습니다.그리고 존스는 놀랍게도 본인과 정반대의 호전적인 인물 잭 웰치를 후임자로 낙점합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죠. 존스가 후임자 웰치를 사무실로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잭, 자네에게 퀸 메리(세계 최대 유람선)를 주겠네. 이것은 침몰하지 않도록 설계됐다네.” 그러자 웰치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난 퀸메리를 폭파할 계획입니다. 나는 쾌속정을 원해요.”
모두가 잭 웰치를 ‘경영의 구루’로 찬양했던 시절이 있다. 그가 직접 쓴 책 ‘Jack: Straight from the Gut’은 역대 최고 원고료인 1000만 달러를 받아 그의 명성을 확인케 했다. 동아일보DB
우선 ‘스택랭킹(Stack Ranking, 층을 쌓듯이 서열화)’을 도입합니다. 모든 직원을 A(20%), B(70%), C(10%) 등급으로 평가해서 C등급은 해고한 거죠. 초기 5년 동안 전체 직원 중 4분이 1인 10만명이 잘렸습니다. 그의 별명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은 이때 생겼죠.
아웃소싱도 이용했습니다. 경비원이나 단순 업무는 임금이 낮은 파견 계약직으로 바뀌었죠. 제조업 관련 일자리 중 상당수는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한 해외로 옮겨갔습니다.
이런 경영방식 어떤가요. 너무 무자비한가요? 아니면 생산성을 높이려면 불가피한가요?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런 방식이 단기 실적과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꽤 효과적이었다는 겁니다. 지금도 미국 기업들은 주주를 만족시키기 위해, 종종 정리해고 카드를 꺼내 들죠. 40년 전의 잭 웰치에게서 배운 겁니다.
제조업에서 금융회사로
1984년 이후 GE 주가. 잭 웰치 임기 막판이던 2000년에 주가는 최고점을 찍었다. 4월 3일부터 GE라는 티커를 쓰는 기업은 항공엔진 제조사인 GE에어로스페이스로 바뀌었다. 구글 금융
이를 위해 그는 무자비한 비용 절감과 동시에 과감한 영토확장에 나섭니다. 재임 동안 약 1000건에 달하는 인수를 성사시켰는데요. 의료서비스와 미디어, 통신, 금융 같은 새로운 분야가 추가됐죠. 세탁기와 냉장고로 유명했던 GE의 정체성은 제조업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GE의 전직 마케팅 임원 베스 컴스탁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잭이 가지고 있던 모델은 ‘팩맨(Pacman, 쿠키를 먹는 게임) 모델’이었습니다. 기업을 먹어 치우고 성장을 획득하라.”
성장하는 산업을 먹어 치울 수 있는 건 대단한 능력과 선구안 아니냐고요? 네, 물론 당시 그렇게 평가받았는데요. 그럼 GE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동원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GE캐피탈로 대표되는 금융의 힘이었습니다.
GE캐피탈은 원래 항공기 엔진이나 발전용 터빈 구매자금을 조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작은 사업부였죠. 잭 웰치는 이를 주택담보대출부터 신용카드와 보험까지, 거의 모든 금융서비스를 포괄하는 강자로 변모시켰습니다.
은행과 달리 캐피탈사는 각종 규제에서 면제됩니다. 대신 캐피탈사는 고객 예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로 자금 조달 비용이 많이 드는데요. 든든한 GE의 우산 아래 있는 GE캐피탈은 예외였습니다(신용등급 AAA). 사실상 규제받지 않는 은행이나 마찬가지였던 GE캐피탈은 ‘세계 최대의 비은행 금융회사’로 급성장합니다. GE캐피탈은 GE를 떠받치는 가장 큰 수익원이 됐죠. 잭 웰치가 은퇴할 무렵 GE 전체 매출의 40%, 이익의 60%를 금융 부문이 차지합니다. GE는 제조 대기업이 아닌 금융회사로 변신했습니다. 잭 웰치는 “공장을 지을 필요도 없다”면서 이를 뿌듯해했습니다.
숫자 게임의 극적인 결말
앞에서 언급했듯이 잭 웰치는 숫자, 즉 단기성과에 집착했죠. 그리고 보기 좋은 숫자를 만드는 데 가장 유용한 수단 역시 GE캐피탈이었습니다.2000년 CNN머니 매거진은 “GE의 엄청난 수익은 미스터리하다”면서 GE의 ‘숫자 게임’을 저격하는데요. GE가 너무 이상할 정도로 꾸준한 수익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게 다 금융 기법을 이용한 숫자 끼워맞추기란 지적이었습니다. 수익이 너무 높을 땐 GE캐피탈이 ‘대출 준비금’ 명목으로 예비금을 숨겨두고, 실적이 부진할 땐 갑자기 분기 말에 모기지 담보증권을 대량 발행해서 분기 수익을 끌어올리는 식이었죠. 일종의 ‘실적 마사지’였습니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탄탄한 실적을 내주는 GE에 투자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주식시장에선 실적이 한해 30% 증가한 뒤 이듬해 10% 줄어드는 기업보다는 매해 꼬박꼬박 10%씩 성장하는 기업을 선호하는 법이죠. 잭 웰치는 주주가 원하는 걸 만들어내는 법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지속 가능할 순 없습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결국 터지고 말았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겁니다. 순식간에 파산 위기에 처한 GE캐피탈은 연방정부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고요. 그룹의 돈줄이었던 GE캐피탈이 무너지자 GE 전체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잭 웰치의 후계자였던 제프리 이멜트 CEO가 다시 뿌리로 돌아가겠다면서 GE캐피탈 사업 대부분을 매각한 건 2015년이었죠.
2000년 잭 웰치가 후계자로 제프리 이멜트를 지명하고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훗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GE가 수렁에 빠지자 잭 웰치는 이멜트를 비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잭 웰치 본인이 그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는 게 지금은 일반적인 평가다. 동아일보DB
보잉과 잭 웰치의 후예들
그토록 잘 나가던 GE는 몰락은 기술의 진보나 시대 변화 탓이 아니었습니다. 단기 이익에 대한 근시안적 집착이 누적된 결과였죠. 본인은 한 번도 인정한 적 없지만(대신 후계자를 ‘shit’이라고 욕함) 잭 웰치가 GE 몰락의 씨앗을 뿌렸습니다.그리고 여전히 그의 실패를 반복하는 잭 웰치의 후예들이 있습니다.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이 그 대표 사례이죠. 데이비드 칼훈 현 CEO를 포함해 무려 3명의 전현직 CEO가 정통 GE 출신, 즉 ‘잭 웰치 키즈’이거든요.
지난 1월 보잉 737맥스 항공기 문짝이 비행 중 뜯어져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알고 보니 조립 과정에서 아예 나사를 빼먹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는데요. 앞서 2019년 737맥스의 기체 결함 이슈로 한바탕 난리를 겪고도 달라진 게 없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보잉이 지난 20년 동안 비용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 대폭 확대하면서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떠났고, 결국 심각한 항공기 품질 저하로 이어진 겁니다. 제품 품질과 안전보다는 주주 이익 극대화에 매진하는 경영진. 바로 잭 웰치의 유산입니다.
GE라는 이름의 대기업은 사라지고 3개의 회사로 완전히 해체됐다. 항공엔진 기업 GE에어로스페이스, 발전기 관련 기업 GE버노바, 의료 관련 기업 GE 헬스케어이다. 사진은 GE.COM 홈페이지 화면.
개인적으로 잭 웰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국 기업 대부분이 채택하는 상대평가식 직원 평가제도를 퍼뜨린 당사자이기 때문인데요. 정작 GE는 이미 9년 전에 평가방식을 절대평가로 바꿨다고 하죠. 잭 웰치의 후예는 어쩌면 미국보다는 한국에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미국을 대표하던 대기업, 제너럴일렉트릭이 지난 3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세기의 경영자’로 불렸던 잭 웰치 전 GE 회장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났습니다.
-잭 웰치는 놀라운 경영 성과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추앙받던 인물입니다. 하위 10% 저성과자는 해고하고 성과가 저조한 사업장은 폐쇄해버린 그는 ‘중성자탄 잭’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제조업 기반의 GE를 사실상 금융회사로 탈바꿈시키며 눈부신 성과를 이뤘습니다. 숫자로 찍히는 탄탄한 실적에 월스트리트는 환호했죠. 하지만 금융기법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잭 웰치가 전파한 단기성과 위주의 경영 방식은 그 이후에도 꽤 오래 남아 기업의 장기성과를 저해하고 있습니다. 나사 빠진 문짝 사태로 얼마 전 CEO가 사임을 발표한 보잉이 대표적이죠. 부디 이게 잭 웰치 유산의 마지막 실패 사례이길 바랍니다.
*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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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