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네거티브 전략에 혹하는 마음… 나쁜 말에 더 집중 ‘부정성 편향’ 정책 공약 같은 이로운 정보보다 원색적 상대 비난이 뇌리에 각인 위험한 소식에 민감해야 살아남는 원시시대 생존본능서 비롯된 성향 악성 정보에 3배 더 민감한 반응… 결국은 긍정성을 이겨내진 못해 네거티브 전략에 정치 회의감↑… “비방만 하는 후보 NO” 역효과도
‘학살 후예’ ‘쓰레기’ ‘매춘’ ‘불륜’ .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듣기 거북한 말들이 선거판에 흘러넘친다. ‘상대가 나쁘니 나를 뽑아 달라’는 원색적 네거티브 경쟁이 치열하다. 상대 후보의 각종 막말부터 편·탈법, 전과 지적 등 다양하다. 개인 신상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도 심각한 수준이다.
자극적 비난의 향연 속에 정작 중요한 후보자의 비전, 정치철학, 정책 공약 등은 설 자리를 잃었다.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가 지역 발전을 위해 내건 핵심 공약은 무엇인지 떠올려 보라.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읽어 보지 않았다면 구체적으로 기억하기 어렵다. 각 당 주요 공약도 마찬가지다. 반면 상대 진영을 향해 던진 비난들은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깊이 박힌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원적으로 작용하는 심리적 기제가 숨어 있다. 왜 정치인들은 네거티브 공세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
● 부정적 정보에 먼저 쏠리는 눈과 귀
인지심리학자들은 부정적 정보에 주의를 더 집중하는 심리적 특성인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부정성 편향은 좋은 정보보다 나쁜 정보에 더 각성되고 영향을 크게 받는 심리적 경향성을 말한다. 정책 공약보다 상대를 욕하는 뉴스에 귀가 더 쫑긋했다면 부정성 편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부정성 편향은 일상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진짜 잘한다”는 칭찬은 쉽게 흘려보내지만 “진짜 못한다”는 비판은 두고두고 신경 쓴다. 또 주식 투자에서 같은 액수만큼 올랐을 때보다 떨어졌을 때 더 큰 심리적 타격을 받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일어나도 우리는 삶에 나쁜 일이 가득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10명 중 8명 “나쁜 정보 먼저 듣겠다”
왜 부정적 정보는 긍정적 정보보다 힘이 셀까. 인간 생존 본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인간은 생존에 위협이 될 만한 부정적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알아두면 좋은 긍정적 정보보다는 모르면 큰일 나는 부정적 정보가 더 중요했다. 예를 들어 사냥감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보다 맹수를 피하려면 어디를 가지 말아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사냥감이 많은 곳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아다닐 수 있지만 맹수는 일단 한 번 만나면 끝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길에서 맹수를 만날 일은 없어졌지만 부정적 정보는 여전히 우리 인지 체계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중 어떤 소식을 먼저 들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러자 10명 중 8명이 나쁜 소식을 먼저 듣겠다고 답했다. 나쁜 소식을 들은 이들은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해결책을 찾는 행동에 곧장 돌입하는 경향성도 발견됐다.
● 공약 홍보보다 가성비 높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거철 네거티브 공세는 여러모로 가성비 좋은 전략이다. 일부 학자들은 부정성은 긍정성보다 3배 이상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후보자가 자신의 정치 철학이나 비전을 세 번 호소하는 것과 상대 후보 ‘디스’ 한 번 하는 것의 효과는 비슷하다.
부정성 편향을 연구해 온 랜디 라슨 미 워싱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1∼3개월간 실험 참가자들에게 하루 기분을 세밀하게 기록하도록 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사람들은 보통 기분 좋은 날 세 번에 기분 나쁜 날 한 번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삶에서 긍정성과 부정성 비율이 3 대 1이 될 때 그다지 비극적이지도, 극적으로 행복하지도 않은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은 “부정적인 경험이 긍정적인 경험보다 약 3배 큰 효과를 낳는다”고 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부정성 편향’의 저자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4의 법칙’을 제안한다. 보통의 삶보다 조금 더 행복하려면 긍정성이 부정성보다 최소 4배는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선거운동에 대입해 보면 자신에 대한 긍정 이미지 홍보를 네 번 해야 상대의 네거티브 공세 한 번을 이길 수 있다.
● 유권자 “신상 공격하는 후보에게 투표 안 해”
안타까운 점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14일뿐이라는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대중 뇌리에 각인되기 위해선 네거티브 공세가 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인간은 위협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정적 정보에 더 솔깃할 수는 있어도 이를 긍정적 정보보다 더 좋아하지는 않는다. 상대를 향한 비방과 욕설 같은 네거티브 공세는 장기적으론 유권자를 지쳐서 떠나게 만든다.
미 조지아공대 연구팀은 15개월 동안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게시글 52만여 개를 분석해 이들의 팔로어, 공유 빈도, 즐겨찾기 추이를 살펴봤더니 부정적 내용을 많이 올리는 이용자들은 초반에 관심을 끌었지만 15개월 후 팔로어 수 증가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긍정적 게시 글을 지속해서 올린 이용자의 팔로어 수는 훨씬 더 늘어났다.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에게 더 끌리게 돼 있다는 것이다.
후보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심성욱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유권자는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 후보자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 특히 상대 후보자의 군대 문제나 가족, 종교, 건강 같은 신상을 공격하는 후보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그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다만 네거티브 홍보 내용 가운데 상대방의 재정 조달 대책 같은 정책 관련 이슈가 있을 때는 달랐다. 유권자들은 상대 후보의 신상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와 주장을 비판할 때 이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후보에 대한 투표 의향도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심 교수는 “상대 후보의 정치적 견해에 네거티브 공격을 한정할 때 비교적 더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일 수 있다”며 “이번 총선처럼 신상 공격이 주를 이룬다면 장기적으로는 유권자들이 정치에 회의를 느껴 투표율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다급한 정치권에선 막말과 원색적 비난을 쏟아 내며 우리의 눈과 귀를 잠시 홀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이를 이성적으로 평가하고 심판하는 능력 또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나쁜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주의가 집중될 뿐, 이를 결코 더 좋아하는 게 아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