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삐친 아이 대응법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쉽게 잘 삐치는 아이들이 있다. ‘삐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동 공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는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기 위한 목적이다. 삐치면 상대가 미안해하기도 한다. 삐침은 어떤 면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거나 물건을 던지는 것과는 달리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아이가 삐치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아이가 삐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부모가 ‘아이의 삐침’을 잘 다뤄주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들은 생활에서 자신이 힘과 영향력이 없다고 느낄 때, 삐침(토라짐), 징징거림, 불평하기 등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이런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줄이려면 평소 아이가 스스로 힘을 행사하고 그것을 조절할 수 있게끔 선택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TV를 너무 오래 시청하고 있다고 치자. 대부분 그냥 혼내고 꺼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는 “이제 그만 보자. 너무 오래 봤어. 그 대신 엄마랑 같이 산책 갈까? 아니면 밀가루 반죽 놀이 할까?”라고 하는 것이다. 아이가 선택할 부분을 주면, 삐침이 좀 덜할 수 있다.
아이가 잘못했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한 것만 들춰내어 지적하고 나무라면 매사에 자신감을 잃는다. 속상할 일이 많아져 삐칠 일도 많아진다. 따라서 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나을지 생각하는 것이 낫다. 잘못보다는 문제 해결 쪽에 무게를 두고 자극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불평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에너지를 쓰는 일이 적다. 그 대신 책임감을 가지고 상황을 좋은 쪽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한다.
아이들은 뭔가 굉장히 걱정될 때 그것을 불평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난 그 집에 안 갈 거예요.”, “내가 왜 수영을 배워야 하는데요?” “나는 그 체육관이 너무 싫어요. 공기도 싫고, 냄새도 싫고, 거기 있는 사람들도 다 싫어요.” 겉으로는 불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아이는 남의 집에 방문하는 것이라든가 수영을 배우는 것, 체육관에 가는 것들에 대해서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어떤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이것을 강하게 표현하지 못할 때 불평이나 삐친 것처럼 표현한다.
부모는 아이가 걱정이 있는 것인지, 정말로 삐친 것인지를 잘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야단을 치거나 설교를 늘어놓지 말고 개방형 질문으로 아이의 속마음을 가늠하는 것이 좋다. “왜 그 집에 가기 싫은데?” 식으로 묻는 것이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은 알아줄 수 있지만, 삐친 아이가 안쓰럽다고 안 되는 행동을 하도록 허락할 수는 없다. 사랑한다고 해서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어서는 안 된다. 뭐든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 아이는 다른 사람과 타협하는 법을 모르고, 원하는 대로 안 됐을 때 좌절을 견뎌 내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좌절감을 느꼈을 때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