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바빠 통 연락 없이 지내던 친구가 도배를 부탁해 오는 일이 종종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랜만에 친구 얼굴도 볼 겸 도배 작업을 맡아 진행한다. 친구나 지인의 부탁을 받아 일을 하다 보면 단순히 도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조금은 더 들어가게 되는 경험을 한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또 한 번은 첫 신혼집에서 조금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옮기는 친구의 집을 도배했다. 결혼식에도 참석하고 신혼 집들이도 갔던 친구인데, 어느새 부부가 힘을 합해 더 나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니 축하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친구 부부는 앞으로 이 집을 어떻게 꾸미고 또 그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활을 해나갈지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 친구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도배를 했다.
그동안 주로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도배하던 나는, 입주자와 직접 마주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도배한 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에 대해 추상적으로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매일 출근해 일하게 될 직장, 누군가가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게 될 안식처를 도배한다는 것은 아직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신축 아파트를 도배하는 것과는 또 다른 보람이었다.
바삐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의 삶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없다. 아니 그런 노력을 할 여유가 없다. 당장 눈앞에 놓인 내 일, 내가 겪는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만 집중하게 되고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도 표면적인 단계에서 그치게 마련이다. 다른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통해서도 우리는 서로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나 역시 도배를 통해서나 혹은 다른 일을 통해서 누군가의 삶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려는 노력을 다시 시작해 본다.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