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회고록 ‘이현서, 나의 일곱 번째 이름’ 이현서 씨 북한 선전용 영상만 보던 사람들… 탈북 현장 담은 다큐 영화 보고 충격 충성심 중요한 北 생활은 불안하나 느슨… 능력대로 사는 南은 자유로우나 고단해 일곱 개 이름으로 살아온 파란만장한 인생… 한국이 자랑스러워하는 ‘이현서’로 살 것
경기 성남시 분당의 자택에서 만난 이현서 씨는 “잘난 것 없는 나의 회고록이 북한의 고통받는 주민들, 그리고 낯선 사회에 적응하려 몸부림치는 탈북민들 모두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북한이 더 나은 나라가 됐으면 한다”고도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탈북 회고록 ‘이현서, 나의 일곱 번째 이름’ 표지. 2013년 영어로 먼저 출간됐고 한국어 번역본은 지난해 나왔다.
2013년 탈북자로는 처음으로 TED 강연을 한 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유엔 북한 인권 청문회장에서 증언하는 등 북한 인권운동가로 세계를 누볐다. 한동안 강연 무대에서 사라졌던 그가 올해 초 개봉된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로 돌아왔다. 실제 탈북 과정을 생생히 담은 이 영화 제작은 35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밀리언셀러 회고록 ‘이현서, 나의 일곱 번째 이름’에서 시작됐다. 그는 영어 내레이션과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뜻밖에 2021년부터 오너 펀드매니저로 일한다고 했다.》
―올해 아카데미상 다큐 부문 예비후보로 선정됐는데 아쉽게도 최종 후보작은 되지 못했다.
“다큐 영화 167편중 15편을 뽑는 예비후보로 선정된 것만 해도 큰 성과라 생각한다. 미국 600개 극장에서 상영됐고 올해 초엔 미 국무부 청사에서 상영회가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군사 퍼레이드 같은 북한의 선전용 영상만 보다 실제 북한 사람들의 처참한 실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현서 씨의 회고록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정작 영화에는 현서 씨 얘기보다 다른 탈북 가족의 얘기가 비중 있게 나온다.
“북한에 사는 이모네 탈북 여정을 찍으려다 계획이 바뀌면서 전체 스토리가 달라졌다. 영화 ‘엑스맨’의 감독이 내 이야기를 3시간짜리 새로운 상업 영화로 찍고 싶다고 해서 만났다. 가족을 탈북시키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호주 여행객 역엔 호주 배우 휴 잭맨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내 배역을 맡을 한국어 영어를 하는 20대 여배우를 못 찾고 있다. 현재 투자자들과 협상 중이라고 한다.”
―영화 속 북한 가족은 중국-베트남-라오스-태국-한국 루트로 탈북하느라 브로커만 50명 넘게 거쳤다. 그런데 현서 씨는 중국 상하이-인천국제공항 루트로 2시간 만에 탈출했다. 브로커 비용도 한 푼 쓰지 않았다.
“탈출 루트를 정하려고 지도에서 베트남 라오스가 어딨는지 찾아보다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인천공항까지만 가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상하이에서 인천을 경유해 방콕으로 가는 왕복 항공권을 샀다. 중국에서 마지막 신분증 이름은 ‘박선자’인데 정신병을 앓고 있는 한국계 중국인 소녀의 것을 비싸게 산 진짜 신분증이었다. 소녀의 부모가 신분증을 팔아 딸 치료비로 쓰려 한 것이다. 진짜 신분증이 있으니 위험하게 가짜 여권을 만들 필요도 없고 태국 비자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그땐 중국인이 한국 비자 받는게 엄청 어려웠다.”
―상하이에서 방콕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인천을 경유해 3200km를 우회하는 여행 경로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
“상하이 출입국 관리소에서는 서울에 사는 남자친구가 인천에서 방콕까지 같은 비행기를 예약해 함께 가려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10분 넘게 여권 신분증 운전면허증을 검토하더니 통과시키더라. 정작 인천공항에 도착해 내가 망명을 원하는 북한 사람임을 증명하는게 어려웠다. 불법 체류하려는 중국 조선족이라 여긴 것이다.”
―중국에서 바로 한국으로 오지 않고 12년간 살았다.
“17세에 압록강을 건널 땐 한국에 온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몰래 중국 드라마를 본 뒤 중국이 궁금했다. 불법 체류자로 불안에 떨며 살다 ‘박선자’의 진짜 신분증을 산 뒤로는 한국 첨단기업의 중국법인에 통역 겸 비서로 취직해 생활도 안정이 됐다. 그런데 2004년엔가 TV에서 베이징 한국 대사관으로 어른과 아이들이 목숨 걸고 돌진하는 장면을 봤다. 앵커가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 북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배고픔이나 나처럼 경솔한 호기심이 아닌 정치적 이유로 탈북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행이 목숨을 걸 만한 가치 있는 일임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상하이에서 사귄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세 가족이 모두 자유를 찾았으니 해피엔딩이다.
“행복해지기란 남한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북한에선 충성심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니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한국에선 개인 능력이 중요하니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북한에서 받은 교육은 여기선 쓸모가 없다. 특히 한국어가 영어보다 어렵다. 메뉴판의 글씨 ‘나초’ ‘팝콘’ ‘콜라’ 모두 아는 글자인데 뜻을 모르겠더라. ‘미팅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를 나와 택시를 탔다’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외래어를 일일이 외우느니 차라리 영어를 공부하자 싶어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어 영어를 복수 전공했다.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사는 자유란 두려운 존재일 수 있다.”
―남동생은 미국 컬럼비아대 학사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에서 결혼해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
“나도 도왔지만 학자금 대출 받아가며 악바리처럼 공부했다.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힘들다. 어머니는 지금도 북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몹시 그리워한다. 왜 탈북자들은 자유와 가족을 모두 가질 수 없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나.”
―북한을 지옥 같은 곳이라 하면서도 북한을 그리워하는 탈북민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북한이 아니라 가족과 고향이 그리운 것이다. 탈북민들은 두 부류가 있다. 정치적 박해를 받고 굶주리며 살았던 사람들은 빠르게 적응한다. 반면 출신성분이 좋아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았던 이들은 서울 생활이 벅차다. 국가가 다 정해주기 때문에 경쟁할 필요가 없는 단순하고 질서정연한 삶을 그리워할 수 있다. 이곳에선 이등 시민으로 사는 탈북민들이 적지 않다. 사람은 자유만으로 살 수 없다. 가족도 있어야 하고 자존감도 있어야 한다.”
―한국행을 결행하게 한 그 남자는 어떻게 됐나.
“서울에 와서도 한동안 사귀면서 프러포즈를 기대했다. 강남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어느 날 내게 대학 진학을 권하며 ‘의사나 약사 시험에 합격하면 우리 부모님이 좋아할거야’라고 말했다. 바로 알아보니 의대는 학비도 비싸고 1등을 해도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결국 내가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고 끝냈다. 친구로 헤어졌다.”
―현서 씨는 강연료가 1만 달러, 줌으로 하면 5000달러를 받는다고 들었다. 강연은 왜 그만둔 건가.
―새로 시작한 일이 왜 펀드매니저인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 금융이니까. 숫자에 밝은 편이다. 강연료와 인세 수입을 펀드에 투자했는데 수익률이 좋아 직접 해보고 싶었다. 2021년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작은 투자일임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돈이 모이면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다. 젊은 탈북민을 돕는 프로그램은 많은데 고령자를 돕는 곳은 많지 않다.”
―일곱 개의 이름으로 살았다. 어느 이름으로 불릴 때 가장 행복했나.
“박민영. 겨울철 눈 덮인 산과 석탄 타는 냄새,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늑한 품, 다정한 이모 삼촌들과 함께 살았던 시절이 그립다. 그땐 바깥세상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현서’ 빼고는 모두 북한에서 내 정체를 알아낼까 봐 지어낸 가짜 이름들이다. 내가 묻힐 곳은 이곳 서울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심 없는 친절을 베풀어줬다. 이제 나도 남을 돕는 인생, 이 나라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내 유일한 진짜 이름, ‘이현서’의 이름으로.”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