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예산은 일부 공개되기도 하지만 전모는 베일에 가려 있다. 국정원 예산은 세 덩어리로 구성된다. 첫째, 지난해 8526억 원이 책정된 공식 예산으로, ‘안보비’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영수증 증빙이 생략되는 특수활동비로 전액 구성됐다가 전직 원장 3명이 재판받는 홍역을 치른 뒤 바뀌었다. 둘째, 기획재정부가 편성한 예비비에서 가져다 쓰는 ‘국가안전보장 활동경비’다. 셋째, 국방부·경찰청 등의 몫으로 책정된 특수활동비를 함께 쓰는 것이 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블랙 예산”으로 부르듯, 합법적으로 숨겨놓은 예산이다.
▷주목받는 것은 안보 활동경비다. 예비비는 태풍 피해가 생기거나, 새만금 잼버리 행사 차질에 따른 긴급대응처럼 1년 전 미리 짜놓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꺼내 쓰는 돈이다. 말 그대로 비상금이다. 하지만 국정원은 상시 예산처럼 쓰는 듯하다. 추정액 기준 2020년 6000억 원, 2021년 6300억 원이다. 예산 규모도 정식 예산(안보비)의 80%를 넘나드는 수준이다.
▷예비비 집행은 국무회의 의결이 필요하다. 국정원은 지난해 4차례 국무회의를 통해 예비비를 가져갔다. 12월에는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 긴급 확보’ 명목이었다. 하지만 어떤 활동이었는지는 2급 기밀이어서 파악하기 어렵다. 지난해 국정원 예비비가 7800억 원이었고, 역대 최대 규모라는 보도가 지난주 나왔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2020년 이후로는 매년 6000억 원대로 올라섰다는 추정이 틀리지는 않는 듯하다.
▷미 국가안보국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이 자국의 불법 행위를 2013년 폭로하면서 예산까지 공개한 적이 있다. 그가 공개한 178쪽 자료에 따르면 CIA가 연 16조 원을 썼다. CIA로선 러시아와 중국이 봤을 이런 노출은 큰 타격이었다. 이 자료를 입수한 워싱턴포스트는 이례적으로 정부와 보도 범위를 상의했다. 보안과 독자 알권리 사이에서 경계선을 찾는 노력이었다. 우리 국정원은 역대 원훈(院訓)처럼 음지에서, 소리 없는 헌신을 해 왔다. 그런 자부심에 걸맞은 예산 투명성 확보의 때가 왔다. 비밀 활동 예산은 100% 보안이 기본이다. 그렇지 않은 활동 예산이라면 국회 정보위가 역할을 더 키우는 쪽으로 변화를 생각해야 한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