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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칼럼]일파만파 대파 논란

입력 | 2024-04-07 23:51:00

韓 총선 키워드로 외신에도 등장한 ‘대파’
선관위 반입금지 조치 놓고 與野 공방
“875원 합리적” 맥락 어떻든 부적절
‘인플레 이기는 정부 없다’ 되새겨야



천광암 논설주간


‘Green Onion(대파)’.

미국 최대 통신사인 AP가 5일 한국 총선 이슈를 다루는 기사에서 3대 키워드를 꼽으면서 가장 첫머리에 올린 단어다.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18일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소 안에 대파를 들고 들어갈 수 없도록 한 것을 계기로 오히려 공방이 격해지는 추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선관위 조치에 대해 5일 “기가 차다”는 반응을 내놓은 데 이어 6일에는 “‘칼틀막’ ‘입틀막’도 부족해 이제는 ‘파틀막’까지 한다”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표와 함께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까지 싸잡아 겨냥해 “일제 샴푸, 위조된 표창장, 법인카드, 여배우 사진을 들고 투표장에 가도 되겠나”라고 맞받았다.

“대파값도 모르는 대통령”이라는 야당 공세에 대해 윤 대통령과 여당으로선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18일 발언이 나올 당시 영상을 보면 농협 측 관계자가 직전 판매 가격과 당시 할인 가격에 대해 설명하자, 윤 대통령이 “여기 지금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데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울 거 아니야”라고 되묻는 장면이 있다.

야당이 대파를 앞세워 ‘민생실패’ 공세를 하기에 앞서 자신의 과거를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하는 것도 맞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1년 상반기 기준 파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156%나 급등해 1994년 이후 27년 만에 최고상승률을 보였다. 가격이 급등한 먹거리는 파뿐만이 아니었다. 사과 배 복숭아 등이 나란히 고공행진을 하면서 농축수산물 전체의 물가지수 상승률은 12.6%로 3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어찌 됐든 대파 공방에 대한 국민의 판단과 심판은 불과 이틀 뒤면 내려질 것이다. 다만 선거 결과가 어떻든 윤 대통령과 정부는 ‘대파 논란’을 그간의 물가정책을 되돌아보는 뼈아픈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의석수가 어떻게 바뀌어도 물가는 발등의 불이고, 그것을 꺼야 할 1차 책임이 윤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첫 번째로 곱씹어 봐야 할 것은 정책의 우선순위다. 윤 대통령은 1월 4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전국 각지를 돌며 24차례에 걸쳐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1회부터 22회까지만 계산해도 총 4970km를 이동해 국민 1671명을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갤럽의 3월 넷째 주 정기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고 한 응답자들이 부정평가 이유로 ‘경제·민생·물가’(23%)를 압도적 1위로 꼽은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광역급행철도 노선 확대, 철도·도로 지하화, 신공항 건설 등 하루하루 서민들의 삶과는 무관한 중장기 ‘토건 이슈’가 주를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메시지 관리다. 물가는 심리적 요인이 강하기 때문에 정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도 중요하다. 지난달 18일 윤 대통령이 하나로마트를 방문한 취지는 ‘장바구니 물가 현장 점검’이다. 그런 현장으로 정부의 납품단가 지원액, 농협 자체 할인, 정부 할인쿠폰을 다 갖다 붙인 가격으로 서울 시내 최저가 수준으로 할인판매를 하는 하나로마트 양재점이 적절한가.

여기에 “875원이면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의 영상과 육성이 방송을 탔으니, 전후에 어떤 맥락이 있어도 ‘실패를 자초한 메시지’다. 현장 민심을 가까이서 접하는 여당 총선 후보들 사이에서 “할인에 또 할인을 거듭하고 쿠폰까지 끼워서 만들어 낸 가격이라면 결코 합리적 가격일 수 없다”거나 “보좌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실이 서민들이 느끼는 물가 고통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전 정부보다는 낫다”는 식의 해명을 내놓은 것도 국민 눈으로 보자면 책임 회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근 경제 각료들의 입에서 “3월이 물가 정점”이라거나 “현장에서 뵙는 소비자는 체감물가가 낮아지고 있다고들 하신다”와 같은 말이 쉽게 나오는 것도 불안불안하다. 동서양을 할 것 없이 과거 실패한 ‘물가와의 전쟁’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섣부른 낙관론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일정을 바꿔가면서까지 인수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전문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정부는 없습니다. 국민들은 성장 못 하는 것은 용서해도 인플레이션을 못 막으면 분노할 겁니다”라는 것이 요지였다. 이 말을 다시 한번 깊이 음미해야 할 시점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