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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 꿈은 현재진행형”…‘신바람 야구’ 류지현의 영원한 청춘[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4-04-08 12:00:00




KBSN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류지현 전 LG 감독의 현재 모습. 류지현 제공



류지현 전 LG 트윈스 감독(53)은 LG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람이다. 서울 출신으로 서울 충암초-충암중-충암고-한양대를 나온 그는 1994년 서울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LG에서 프로에 데뷔했고 줄곧 LG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뒤 2004년 LG에서 은퇴했다. 이듬해 그는 LG 수비·주루 코치로 지도자 인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까지 LG에서 작전 코치, 주루 코치, 수비 코치, 수석 코치 등을 역임한 뒤 2021년과 2022년 2년간은 LG 감독을 지냈다. 처음 LG에 입단한 1994년 이래 잠시나마 다른 유니폼을 입은 건 미국 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코치 연수를 했던 2007~2008년뿐이다.

류지현 전 LG 감독의 초등학교 선수 시절 모습. 류지현 제공


그냥 단순히 오랫동안 LG와 인연을 맺었다는 설명 정도로는 부족하다. 신인이던 1994년 그는 입단 동기 서용빈-김재현 등과 함께 ‘신바람 야구’의 주역이었다. 얼굴도 잘생기고, 야구도 잘했던 신인 3인방 덕분에 LG는 단숨에 한국 프로야구 최고 인기 구단이 됐다. LG가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 직전 마지막 우승이 이들이 함께 했던 1994년이었다.


그가 LG 시절 달았던 등번호 6번은 한동안 LG 유격수의 상징 같은 번호였다. 그의 별자리가 ‘쌍둥이 자리’라는 말도 있다. 류 전 감독은 “한 팀에서 선수, 코치, 감독을 하면서 팬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모든 야구인이 꿈꾸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는 영광도 맛봤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1994년 LG 신바람 야구 주역이었던 류지현(왼쪽) 김재현(가운데) 서용빈. 동아일보 DB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LG 트윈스의 상징 같은 존재인 그는 어쩌면 서울 잠실구장을 함께 쓰는 ‘한 지붕 라이벌’ 두산 베어스의 류지현이 될 뻔 했다.

고교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던 그는 충암고를 졸업한 1990년 한양대에 진학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의 기량을 눈여겨본 OB(두산의 전신)가 그에게 입단을 제안했다. 뿌리치기 힘들 정도로 조건도 좋았다. 실제로 그의 부모 역시 대학 진학보다는 OB 입단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대학 진학이었다. 이유는 태극마크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류 전 감독은 “프로의 유혹을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국가대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며 “만약 그때 OB에 입단했다면 LG의 류지현이 아닌 OB의 류지현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한양대를 졸업한 1994년 그는 1차 지명으로 LG에 입단했고, 그해 타율 0.305, 15홈런, 52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류중일 한국 야구 대표팀 감독(오른쪽)과 함께 한 류지현 대표팀 코치. 동아일보 DB


단숨에 큰돈을 벌 수 있는 프로의 유혹을 뿌리칠 만큼 국가대표는 그에게 의미가 남달랐다.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의 목표가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류 전 감독은 “개인적으로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대화 선배님이 홈런을 치는 것을 보면서 야구를 시작한 세대”라며 “그때부터 ‘언젠가는 나도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꿈은 빨리 이뤄졌다. 고교 1학년부터 청소년 국가대표에 뽑혔고, 고3 때는 벌써 성인 국가대표로도 발탁됐다. 한양대 재학시절에도 줄곧 태극마크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프로에 와서도 1995년과 1999년 한일 슈퍼게임 멤버로 출전했다.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꿈을 이루고 있다. 코치 2년차이던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그는 젊은 코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의 경험은 그가 2007년과 2008년 시애틀에 자비 연수를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국가대표를 오래 하면서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에서도 뛰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시스템을 제대로 볼 기회는 없었다”며 “더 많은 걸 배우기 위해 미국 연수를 결심했다. 2년간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으로 시작으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2023년 항저우 대회까지 3번 연속 아시안게임에 코치로 참가해 세 번 모두 금메달에 힘을 보탰다. 류 전 감독은 “태극마크의 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꿈이 이뤄지고 있으니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격수로 성장한 LG 오지환(오른쪽)은 류지현 전 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사진은 오지환의 프로 초창기 시절. 동아일보 DB


물론 그도 아쉬워하는 게 있다. 2022시즌 그가 지휘봉을 잡은 LG는 정규시즌에서 팀 역대 최다승(87승)을 거뒀다. 다승왕(케이시 켈리)과 세이브왕(고우석), 홀드왕(정우영) 등을 모두 배출했고, 야수진에서도 젊은 선수들을 잘 키워내며 정규시즌 2위를 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3위 키움에 1승 3패로 밀려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그 결과 유력해 보였던 LG와의 재계약에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LG는 이듬해인 2023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류 전 감독은 “1994년 우승 후 팬들에게 매년 약속드렸던 우승을 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컸는데 후배들이 우승을 이뤄져 뿌듯하게 지켜봤다”고 말했다.

더이상 LG 유니폼을 입고 있진 않지만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바쁘고 활기차게 살아간다. 그는 올해도 한국 야구대표팀 코치로 11월 일본에서 열리는 프리미어12에 참가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 재능기부위원을 맡아 틈날 때마다 지방을 돌며 유망주들을 지도한다. 올해부터는 KBO 전력강화위원도 맡았다. 그는 “프로 입단 후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살면서 아마추어와 학생 야구에 제대로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며 “눈높이를 어린 학생들에게 맞추면서 내가 가진 노하우를 전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류지현 전 LG 감독과 권성욱 KBSN 캐스터가 캠프지에서 찍은 사진. 류지현 제공


감독을 그만둔 지난해부터는 KBSN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보다 넓은 시선으로 야구를 보고 있다. 그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해설로 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류 전 감독은 “새로운 일이다 보니 준비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지방 경기가 있으면 하루 전에 먼저 내려가 미리 자료 등을 준비한다”며 “현장이 아니 또 다른 시선으로 야구를 관찰하고 있다. 중계석에서 팬들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것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해설자’ 류지현에게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는 김재박 전 LG 감독과 류중일 대표팀 감독, 박진만 삼성 감독의 수비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그는 “김 감독님은 시대를 앞서간 플레이를 했던 분이다. 류중일 감독님은 포구와 송구에 있어서 교과서적인 유격수였다. 박진만 감독은 타자 성향에 따라 미리 타구의 방향을 머리 속에 그리고 수비를 했다”며 “만약 이 세 분의 장점을 모두 합치면 김하성이 될 것”이라는 현답을 내놨다.


류지현 전 LG 감독이 평생을 함께 한 아내 이미선 씨와 여행 중 사진을 찍었다. 류지현 제공


선수 시절 ‘꾀돌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도 어느덧 5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선 나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50대 중년 남성을 중 ‘최고 동안’을 자랑하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선수 시절부터 소식(小食)을 하는 편이었다. 키도 별로 크지 않은데 옆으로까지 퍼지면 좋아 보일 것 같지 않아서였다”고 농담을 한 후 “많이 먹기보다는 적당한 양을 먹고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는 스타일이었다. 1번 타자 유격수를 하면서 활동량이 많았기에 제대로 쉬어 주는 것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음식물을 잘 먹지 않는 습관도 있었다. 그는 50살이 넘어서 커피를 처음 마셨다고 한다. 커피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서가 아니라 운동 선수에게 카페인 성분이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커피에 처음 입에 댄 계기 역시 승부 때문이었다. 그는 “LG 감독을 할 때 손님이 찾아온 적이 있다. 직원이 커피 두 잔을 가져와서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마셨는데 그날부터 팀이 연승을 했다. 그 이후 커피를 배워 요즘도 가끔 마시고 있다”고 했다.

류지현 전 LG 감독이 제주 여행 중 찍은 가족 사진. 평생 서울에서만 살아온 그는 타지에서 한달살기에 도전해볼 계획이다. 류지현 제공


이처럼 그의 모든 인생은 ‘야구’에만 맞춰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지난 50년에 대해 “내겐 오직 승부만 있었다. 이기는 재미로만 살았다. 술도, 골프의 재미도 모르고 살았으니 밖에서 보면 참 재미없는 인생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에서야 그는 좀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 감독을 그만둔 지난해 그는 생전 처음으로 본격적인 등산을 해 봤다. 서울 인근 청계산, 북한산 등을 다니며 복잡했던 머리를 식혔다. 아내 이미선 씨와 함께 산을 오르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많은 대화도 했다. 평생 야구장 내 설치된 웨이트트레이닝 실에서 운동을 했던 그는 난생 처음 스포츠센터 회원권을 끊어보기도 했다. 그는 “낸 돈이 아까워서 하루라도 더 운동을 갔다”며 웃었다.

그는 “현장 밖에 정말 다양한 삶이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다양한 직종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며 “늦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방송도 더 재미있게 해보고 싶다. 류지현만의 색깔 있는 방송을 하는 게 현재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또 “한평생을 서울에서만 살았다. 아이들이 좀더 크고 여유가 생기면 제주도나 외국 어딘가에서 한달살이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